"처음엔 무모하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미쳐도 행복하게 미쳤다고 해요."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서 호수를 끼고 북동쪽으로 600㎞를 달리면 나오는 가롱가 읍. 이 궁벽한 오지에 `농투성이` 한국인 부부가 산다. `말라위 부부 선교사` 진형근(프란치스코, 59)ㆍ이명혜(소피아, 56)씨 부부다.
부부는 가롱가 읍 인근에 13만 2231㎡(4만 평) 규모 5개 농장을 운영한다. 대구농고를 거쳐 한국방송통신대 농학과를 나온 남편의 경력이 큰 힘이 됐다. 마리아회(마리아니스트)가 68개 마을 9000여 명 고아들을 돌보는 무주주교구 루수빌로보육원(Lusubilo Orphan Care)과 함께하는 일이다.
비료도, 종자도 없는 상황에서 황무지를 개간, 주민들과 함께 농장을 하나하나 세웠고, 조만간 또 다시 농장 한 곳을 더 만들 계획이다. 사비를 들여 선교를 하던 부부에게 지난해 수원교구 한마음운동본부에서 지원해준 3000만 원은 큰 힘이 됐다. 수원교구 상현동본당 빈첸시오회 등도 꾸준히 부부를 후원했다.
주작물은 옥수수지만, 벼에 토마토ㆍ콩ㆍ채소 등도 재배한다. 해마다 12월에서 4월까지 이어지는 우기에 재배하기에 지난 5월 옥수수는 826가마니, 알곡만 추려 500가마니를 거뒀다. 벼는 100가마니, 콩 20가마니, 땅콩 20가마니를 추수했다. 토마토는 요즘 한창 수확 중이다.

▲ 말라위 가롱가에서 활약하는 진형근 선교사가 지난 5월 융궤농장을 방문해 현지 주민들과 함께 옥수수를 수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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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위 텃밭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씨앗을 뿌려 배추와 가지ㆍ아욱ㆍ호박 등 갖가지 작물을 키운다. 이렇게 수확한 작물은 현지 고아나 어려운 형제자매들과 나눈다.
올들어 부부는 새 사업을 시작했다. `식량은행(Food Bank)`이다. 고려ㆍ조선시대 때 농민구호기관인 의창(義倉)에서 힌트를 얻은 이 사업은 쌓아둔 곡식을 춘궁기에 빌려주고 수확기에 같은 양을 돌려받는 방식이다.
지난 2월 춘궁기에 100가구를 선정해 1가구당 1가마니씩 빌려주고, 5월 수확 때 70여 가마니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5월 수확 때 600가마니를 창고에 쌓아뒀다. 새로운 실험에 현지 원조기구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 손실률은 20~30지만, 현지 주민들이 자급자족하는 기반을 만들어주기에 신선하단다.
"현지 주민들 집에 가보면 정말 사는 게 아닙니다. 식량을 쌓아둔 집이 단 한 집도 없어요. 하다못해 빈 쌀자루 하나도 없더군요. 다들 하루 한 끼 먹는 게 고작이구요. 그래서 수명도 40살 안팎이에요. 그래서 푸드뱅크사업을 시작했어요."
숙제는 창고다. 곡식을 쌓아둘 창고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서다. 맨처음 옥수수 100가마니를 사고 창고를 지을 종잣돈은 서울에 사는 가정주부 유춘희(실비아)씨가 기증한 1000만 원으로 마련했다. 이번에 3년 만에 귀국해 마련한 후원금으로 새 창고를 지으면 더 많은 가구와 나눌 계획이다. 또 건기 때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호수에서 물을 끌어들이거나 수동펌프를 가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농업선교의 새 바람을 일으킨 부부가 선교사가 되려는 꿈을 꾼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전엔 직장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았다. 그런데 2005년께 `오롯이 주님만 섬기며` 살고 싶어 선교사 꿈을 꾸게 됐다. 그리고는 2006년 수원가톨릭대 하상신학원에 들어가면서 경제활동을 접고 두 아들은 주님께 맡겼다. 평신도 선교사 양성 교육을 지원하는 수원교구 직암선교후원회 설립에도 관여했다.
아프리카로 간 건 살레시오회 이태석 신부 영향도 컸다. 2년 과정 교육을 마친 부부는 2008년 5월 그야말로 `물설고 낯선` 가롱가로 떠나왔다. 두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장학금을 받아가며 대학을 나왔고, 최근엔 장남이 혼자 힘으로 결혼까지 했다.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터다.
부부가 현지에서 적응하기 가장 힘든 건 우기와 건기로 이어지는 현지의 열악한 기후와 풍토병이다. 모기와 빈대, 벼룩이 장난이 아니다. 벌레에 약한 부인은 온 몸에 100여 군데나 물려본 적도 있다고 한다. 집 안에 벼룩이 툭툭 튀어다니고 가려워 잠을 잘 수도 없는 형국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힘을 낸다. 베푸는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한국에서 살 땐 노후를 위해 끊임없이 저축을 해야 했는데, 이젠 주려고만 하니 행복해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은 듯합니다. 가장 힘이 되는 건 역시 아내와 같이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말라위에 묻히고 싶은데, 아내는 베풀다가 이들에게 폐가 되는 때가 되면 돌아가자고 하네요.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겠지요."
3년간 고생하느라 빠진 치아를 치료하려고 3년 만에 돌아온 부부는 모처럼 5개월간 휴식 끝에 오는 30일 다시 말라위로 떠난다.
▨ 후원 계좌 : 국민은행 9-797979-1004, 예금주: 아프리카말라위선교회(진승호)

▲ 3년 6개월째 `말라위 부부 선교사`로 활약 중인 진형근ㆍ이명혜씨 부부는 "선교란 거창한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면서 내가 믿는 주님을 실천으로 증거하는 것이다"고 귀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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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