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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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기획] 우리들의 기다림/인천 자모원 미혼모들

원치않은 임신, 그래도 생명은 살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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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다. 아기를 임신한 산모들에겐 이 대림시기가 더 특별하게 다가올 듯 싶다. 모든 이들의 축복 속에 아기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지만 힘겨운 선택 속에 아기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바로 미혼모들이다. 대림시기를 맞아 누구보다 더 간절히 아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는 미혼모 쉼터 인천 자모원을 찾았다.


 #1.
  "저는 이 아이를 낳아서 키울 겁니다. 아이가 꿈틀거리기도 하고 제 배를 발로 차요.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아이라고요. 아버님."
   확고하고 단호했다.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아기를 낳기로 결심해 자모원에서 지내는 김 엘리사벳(20)씨는 느닷없이 자신을 찾아와 아이를 지우라고 말하는 남자친구 아버지 A씨에게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했다. 당장 낙태하라고 으름장을 놓던 A씨는 침착하고 확신에 찬 김씨 모습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A씨는 그 뒤에도 여러 번 김씨를 찾아와 뒷일은 다 수습해 줄테니 아이만 지우라고 했다. 그 때마다 김씨는 "낙태는 살인이고 하느님 뜻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출산일이 임박했을 때 A씨는 아들과 함께 나타났다. 아들은 그동안 미안했다며 김씨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생명을 지키겠다는 김씨의 한결같은 태도가 A씨를 감화시켰고 A씨가 아들을 설득시켜 데리고 온 것이다.

 #2.
   "내 딸 내놔. 내놓으라고! 내 딸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야!"
   1층 로비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까지 대동하고 온 어머니 B씨가 딸을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소란를 피웠다. 2층에선 딸 이 마리아(18)양이 부른 배를 감싸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어떡해요, 선생님. 엄마 따라 집에 가면 아이를 지우게 되겠죠? 엄마 말대로 눈 딱 감고 아이 지우고 살까요? 사실 저 아직 마음을 못정했어요. 키울 자신도 없고 너무 힘들어요. 흑흑흑."
   이양은 상담교사를 붙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상담교사는 생명을 선택한 결정이야말로 아기와 이양 모두에게 가장 큰 선물이라며 위로해줬다.



 
▲ 인천 자모원 미혼모들이 지난 가을 바닷가로 놀러가 그린 그림을 들고 즐거워하고 있다.
자모원에서 가장 신경쓰고 있는 부분은 미혼모들이 치유와 화해를 통해 아기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인천 자모원 원장 신지영(성황석두루카외방선교회) 수녀는 "우리 집은 무슨 일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터기도 하지만 상상치 못한 기적이 일어나는 하느님 은총의 현장이기도 하다"며 자모원을 소개했다.
 인천 자모원에는 예비 엄마 20명이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머무르고 있다. 이 중에는 볼과 이마에 여드름 자국이 송송한 10대 청소년들이 절반 이상이다.
 아기를 가졌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아기만 포기하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아직 뭘 몰라서 그런다며 이 사회가 미혼모에게 얼마나 차갑고 냉정한지만을 이야기해줬다. 그 누구도 함께 기뻐하고 축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자모원에 머문 이들은 잘 해결될 것이라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기를 선택했다. 사회가 얼마나 매몰찬지 모르겠지만 뱃속에선 그 작디작은 존재가 심장을 쿵쾅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생명을 죽이는 건 살인이라고 배웠는데 낙태엔 왜들 그렇게 관대한지 알 수 없었다. 비로소 자모원에 오고 나서야 움츠린 어깨를 펴고 축하받을 수 있었다.
 박영희(가명, 19)양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눈에선 눈물이 났는데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며 복잡했던 심경을 털어놨다.
 박양은 "엄마는 아기를 지우라고 했는데 고1 수업시간에 봤던 낙태 동영상이 생각나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면서 "지금은 내 결정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알게 돼 마음이 편안해졌고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자모원에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미혼모들이 치유와 화해를 통해 아기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곳으로 오기까지 미혼모들이 겪은 갈등과 고통, 그로 인한 상처의 깊이를 잘 알기에 상담과 다양한 심리치료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 올바른 생명교육으로 아기를 선택한 일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일인지를 새롭게 깨닫게 해준다.
 김 데레사(24)씨는 "도저히 미혼모로 살 자신이 없어 아기를 지우겠다고 했는데 독실한 신자인 엄마가 생명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고 해서 날 이곳으로 끌고 왔다"며 "처음엔 엄마가 이해도 안 되고 원망스러웠지만 이제야 엄마에게 감사할 수 있게 됐고 아기에게 부끄럽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이명자(안젤라) 상담사는 "단지 생명을 살리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아이들인데 이보다 더 기특하고 훌륭한 아이들이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뱃속 아이에게 생명을 준 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고 가르친다"면서 미혼모를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자모원은 미혼모들에게 새 삶을 살 수 있는 희망을 심어주는 데도 힘쓰고 있다. 지난 7월 자모원이 대안학교로 인정받은 덕분에 이곳에 머무는 중ㆍ고생 미혼모들이 배가 부른 채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현재 미혼모 2명이 수능시험을 보고 대학 합격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취업을 원하는 미혼모들을 위해선 취업에 필요한 교육도 힘닿는 데까지 지원해주고 있다. 특히 오는 14일엔 자모원 옆 답동성당에 카페를 열 예정이어서 미혼모 5~6명이 부푼 마음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다.
 신지영 원장 수녀는 "올해에는 성탄을 앞두고 기다리고 있는 기쁜 일들이 많아 힘이 난다"며 "자신을 희생하면서 생명을 살린 우리 미혼모들에게 하느님께서 더 많은 은총을 내려주실 것을 믿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생명 기다리는 곳엔 반드시 기적이 있죠"
-인천 자모원장 신지영 수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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