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체감온도가 영하 30도 가까이 되는 혹한기 훈련장에서 따뜻한 정(情)이 담긴 초코파이를 건네는 이효석 신부.
초코파이를 받는 장병들 표정이 천진난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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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웠다. 영하 20.6℃를 기록한 경기도 파주의 동장군(冬將軍)은 정말이지 매서웠다. 시시때때로 불어오는 칼바람에 얼굴이 시렸고, 장갑을 낀 손끝의 감각은 무뎌질 대로 무뎌졌다.
`55년 만의 한파`라는 말이 실감나는 2일, 파주시 광탄면 신산리 전진성당에서 만난 이효석(군종교구 전진본당 주임) 신부가 상자들을 차 트렁크 가득 싣고 있었다. 매서운 날씨도 이 신부의 손놀림을 더디게 하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장병들이 얼마나 이 상자를 기다리는 줄 아세요?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 이상입니다. 이따 보면 깜짝 놀랄걸요.(웃음)"
상자에는 군인들의 1등 간식이라는 초코파이와 비타민 음료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초코파이를 나르는 배달부
이 신부가 부지런히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육군 1사단 혹한기 야외 전술훈련장. 성당에서 30여 분 정도 달려 도착한 임진강 건너 민간인통제구역 내 훈련장은 흡사 `다른 세상` 같았다. 자주포와 여기저기 설치된 막사, 장전된 총을 들고 서 있는 군인들 풍경은 군대의 `군`자도 모르는 여기자 눈에는 실제 전투 현장이나 다름없었다.
"충성! 신부님, 여기까지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광희 주임원사가 큰 소리로 경례하며 이 신부를 맞았다. 이 신부의 깜짝 방문이 무척 반가운 눈치다. 김 주임원사는 "혹한기 훈련의 가장 큰 적은 뭐니 뭐니 해도 추위"라며 "포병 300여 명이 15겹 이상 옷을 껴입고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주임원사는 체감온도가 영하 30℃ 가까이 된다는 사실도 덧붙이며 이 신부와 기자를 장병들이 쉬고 있는 막사로 안내했다.
막사에 들어서자마자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훈련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장병들이었다. 이 신부가 "너희는 내가 반가운 거야? 아니면 초코파이 상자가 반가운 거야?"하고 묻자 장병들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여러분이 힘든 훈련을 잘 받고 있는 게 대견스러워 격려하려고 왔습니다. 내일이면 혹한기 훈련도 끝납니다. 여러분이 무사히 훈련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이 신부는 장병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초코파이를 나눠주며 격려했다. "동상은 안 걸렸어?", "제대 얼마나 남았나?", "세례명이 뭐냐?"며 살갑게 등을 두드려주는 이 신부 격려에 장병들은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홍석현(미카엘) 이병은 "신부님의 깜짝 방문에 힘이 번쩍 난다"며 "일병이 돼서 여유가 생기면 꼭 성당에 나가 주님께 기도하며 군 생활을 하겠다"고 말했다.
`간식 배달`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서는 이 신부를 향해 장병들이 "고맙습니다!"하고 외쳤다. 장병들이 느끼는 체감온도가 조금은 올라간 듯했다.
#군종 신부의 특별한 겨울

▲ 군종신부의 겨울은 이래저래 바쁘다.
북녘과 맞닿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전진본당에서 사목 중인 이효석 신부가 육군 1사단 장병들과 성당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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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으로 돌아오는 길, 이 신부는 "장병들에게 건넨 초코파이는 단순한 초코파이 그 이상의 의미"라며 "추운데서 힘들게 훈련하는 장병들에게 외부인의 방문과 따뜻한 말 한마디는 큰 격려가 된다"고 말했다.
장병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마치 프로(?)처럼 느껴졌는데 웬걸, 아니었다. 지난해 7월 임관하고 첫 임지로 전진본당에 부임한 이 신부에게도 혹한기 훈련 위문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신학생 시절에 군 복무를 한 덕에 장병들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게 이 신부 설명이다.
"사제품을 받을 때부터 꼭 군종사목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빛나는 나이에 세상과 격리된 채 고생하는 장병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싶었거든요."
육군 1사단과 JSA 부대를 담당하는 이 신부는 주일에만 120㎞가 넘는 거리를 이동한다. 부대 내 공소미사를 주례하고, 훈련장을 찾아다니느라 경기 북부 일대를 종횡무진 누빈다.
"열심히 한다고 하긴 하는데 개신교 선교활동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에요. 1개 사단에 개신교회가 20여 개 있습니다. 평신도 선교사도 많이 활동하고 있고요. 선교 투자와 아울러 장병들을 적극 품어주려는 가톨릭교회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이 신부와 대화가 거의 끝나갈 즈음 다시 도착한 전진성당. 며칠 전 혹한기 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복귀한 장병들이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었다. 이 신부는 얼른 남은 초코파이를 챙겨 그들에게 다가갔다.
"눈 깨끗하게 잘 치우고 있나?"(이 신부)
"네! 신부님. 다 쓸었습니다! 저희도 간식주세요!"(장병들)
이서연 기자 kitty@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