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바람처럼 선교 활동이 마무리되자 조용한 신앙생활이 이어졌다. 차기 주임 신부님은 내실을 다지는 소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어느 날 신부님이 부르셔서 만나 뵈니 소공동체를 맡아 보라고 하셨다. 나는 놀라서 “구역에서 반장만 하고 있는데 이 큰 본당 총 구역을 어떻게 맡느냐”고 말씀드리니, “할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없다는 복음말씀이 생각나서 두말없이 “네”라고 말씀드렸다.
우선 “각 구역 활성화가 시급하다”시며 “방안을 연구해 보라”고 하셨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나는 그렇게 소공동체 위원장을 맡고서는 고민에 빠져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돼 고민하고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일단 총회장님과 의논하고 우선 형제회를 활성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총회장님과 형제들의 반 모임 현황을 파악하고, 없는 구역에는 의무적으로 형제회를 구성하게 했다.
조직 구성이 되면 신부님과 반 모임에 참석하면서 구역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사목하시는 신부님을 도왔다. 판공 시기 때마다 구역으로 돌며 가정방문을 하고 구역에서 판공 미사를 참례했다. 마치고 집으로 오면 밤 11시는 기본이었다. 그래도 힘든 줄 모르고 신나서 한 걸 보면 하느님 은총이 늘 우리 가정에 머무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신나고 재미나게 구역 활성화를 위해 일하고 있을 때 단합 모임을 가게 됐다. 통영으로 구역봉사자들(구역장, 반장, 형제 회장, 총무)과 1박2일 일정으로 버스로 가던 중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 나는 아슬아슬하고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갓길도 없는 곳에서 차가 퍼지는 바람에 총회장이 나가서 수신호로 차들을 이동시켰다. 쌩쌩 달리는 차들의 힘에 우리 차가 출렁하고 흔들리면 우리는 차 안에서 하느님을 찾으며 목적지에 무사히 갈 수 있기를 기도드렸다. 그렇게 주님의 가호 아래 아슬아슬 모임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도 함께 갔던 신자들은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웃는다. 주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하느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일화인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병자영성체 동행했을 때 일이 생각난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할머니가 있었다. 장애를 가진 아들하고 사셨는데 아들 혼자 남겨두고 가기가 힘드셨는지, 운명하실 것 같다고 해서 신부님을 모시고 다녀오면 회복되기를 반복하셨다. “할머니! 아드님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수호천사님 따라가세요”라고 귓속말로 속삭여드렸다. 그 후로 할머니는 네 번의 병자성사를 더 받으시고서 하늘나라로 편안히 가셨다.
그렇게 재미있고 보람차게 소공동체를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활성화됐던 구역 공동체가 침체 분위기가 됐다. 새로움이 필요했고, 마침 한 분야 봉사를 너무 오랫동안 한 것 같다는 마음도 들어서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생각으로 9년 만에 더 훌륭하고 멋진 분에게 위원장직을 물려줬다.
이미용 베냐민
제1대리구 대천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