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아주 다양한 만남을 경험한 하루가 있었습니다. 그날은 첫 번째 토요일이었고, 아침에 성모 신심 미사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신심 미사를 봉헌하면서 미사에 오신 분들과 언제나처럼 만났습니다.
미사 후 매달 봉성체를 갔던 요양원의 한 할머니가 위독해지셔서 병자성사를 청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급하게 가서 할머니를 만나고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다행히 아직 의식이 있으셔서 성사 전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가족들도 만났습니다.
점심 식사 후 어린이 미사를 봉헌하며 초등부 주일학교 아이들과 교리 선생님들을 만났고, 미사를 마치고는 유아세례를 주면서 아이와 함께 자신들 자녀가 하느님 사람이 되고 축복을 받는 것을 기뻐하는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이어서 교리 수업을 마친 아이들과 함께 간식을 먹고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토요일 오후 내내 성당에 와서 열심히 졸고 먹고 놀았던 아이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많지는 않지만 언제나처럼 중고등학생들과 청년들이 성당에 왔습니다. 토요일 저녁 시간을 하느님과 함께 보내는 것을 선택한 그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웃기지 않은 농담은 절대 받아주지 않는 중고등학생들과, 처절한 인내심으로 참고 받아주는 청년들과의 만남이 끝나고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청년들은 또 다른 주님(?)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성당 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 정해진 마지막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혼배성사 면담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신자였지만, 청년이 된 후 성당에 나오지 않다가 냉담과 혼인 장애를 풀고 다시 신앙생활을 하려는 부부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분들 이야기를 들으며 혼인 문서를 작성하고 혼인성사 날짜를 정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마무리한 후 본당 청년들의 의례적인 초대(?)를 진짜로 받아들여 그들이 모여 있는 맥줏집으로 가서 함께 한잔까지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마치고 사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잠들기 전에 끝기도를 하면서 하루를 되돌아보는데, 문득 ‘사제가 신자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신자들 삶의 시작과 마침까지의 모든 것에 함께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시간이 그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유아세례를 주면서 이제 막 생명으로 태어난 아기들과 부모들을 만났고, 어린이 미사 안에서 그보다 조금은 더 큰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만났으며, 저녁에 청소년 미사를 봉헌하면서는 중고등학생들과 청년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또 병자성사를 통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시는 어르신과 그분을 하느님 품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가족을 만나기도 했고요.
당연히 신심미사와 저녁 미사 안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곧, 인생의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모두 만난 하루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제의 삶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하루였습니다.
정희성 베드로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