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갑’과 ‘을’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듣거나 경험할 때, 그런 마음이 들고 기분이 씁쓸해집니다.
어느 날, 저녁 늦은 시간에 근처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물건들을 모두 담은 후 계산대 앞에 줄을 섰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물건들을 하나둘씩 올려놓고 있는데, 바로 앞에 계셨던 손님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생각한 금액과 영수증에 찍힌 금액이 맞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래서 전체 영수증에 찍힌 명세를 하나씩 확인하면서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생각만큼 쉽게 확인이 되지 않아서인지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그러자, 그 손님과 같이 있던 일행분이 참지 못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의를 제기하셨던 분도 같이 화를 내었고, 그 화는 모두 다시 계산하던 직원에게 쏟아졌습니다.
직원은 연신 “죄송하다”고 “물건과 가격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했으나, 이미 화가 난 이들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쇼핑 카트에 담겨있는 전체 물건들을 던지듯이 직원에게 주면서 환불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 “똑바로 일하라”고 야단쳤습니다. 직원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며 이 모습을 보다가, 그분들의 무례함에 화가 나 항의하려던 순간 마트에서 근무 중이던 보안요원이 왔습니다. 그래서 ‘잘 마무리가 되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갑이자 왕인 손님’ 이야기를 들은 보안요원은 갑자기 직원 이야기를 듣지도 않은 채 손님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그 보안요원에게 제가 지켜본 이야기를 해주면서 직원이 당한 무례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제 뒤에 있던 손님들도 함께 증언해 주었습니다. 그 부부는 당황하였고, 큰소리로 화를 내면서 환불받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당황한 보안요원은 저희에게 어쩔 수 없었다며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니라 “직원분에게 죄송하셔야 한다”고 해주었습니다.
상황이 마무리되고 계산대 직원은 제 물건을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에 계산이 끝난 후 커피 하나를 드리면서 “너무 마음 쓰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직원은 울음을 터트리시며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변 직원들이 와서 위로해 주었고, 저는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마트를 나오면서 기분이 씁쓸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분명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곳인데, ‘갑’과 ‘을’이 살아가는 곳으로 변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정희성 베드로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