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검은 토끼해를 맞이하여 모든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올해 6월부터 사회의 모든 나이 기준을 ‘만 나이’로 한다고 예고되었고, 이제 외국인들처럼 태어나서 1년이 지나면 ‘1세’라는 세상 나이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한 살 줄어들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가정 사목을 하는 사제 입장에서는 만 나이로 기준을 삼겠다는 정부 방침에 마냥 찬성하고 싶은 마음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어머니 자궁 속에 들어 있는 생명을 존중해 왔고 ‘태명’이라는 이름도 지으며 배 속의 아이와 소통해 왔습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을 하고 착상하여 뇌가 생겨나고 심장이 생기면서 10주 동안 인간의 모습으로 생성되어 집니다. 그러고는 5개월이 지나면서 태동이 시작됩니다. 어머니는 그 움직임에 놀라 배 속의 아이와 소통을 시작하고 아이는 하루하루 성장하며 서로가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쿵쿵쿵’하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힘찬 발길질에 솟아오르는 배를 만져 가며 아기는 엄마, 엄마는 아기의 존재를 인식하며 태어날 그날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래서 동양 최초의 태교서인 사주당 이씨의 「태교신기」는 ‘뱃속 열 달이 출생 후 10년의 가르침보다 더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에 어머니 배 속의 시간을 인정해서 ‘태어나면서 한 살을 부여하는 의미가 더 생명 존중 사상을 담고 있다’고 외국 사람들에게 줄곧 자랑해 왔는데, 이제 나이가 줄어들어 젊어졌다는 느낌보다 혹여 어머니와의 소통 시간이 만 나이로 사라지면서 생명경시현상이 생겨날까 싶어 그렇게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닌 듯 싶습니다.
이제 태어나서 1년이 지나 한 살이 되기 전에는 몇 개월로 명명한다고 하니 이미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3주, 10주, 5개월, 6개월, 9개월의 시간을 재어 오고 있었는데 어머니 품속에서의 생명 나이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요?
구세주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유다 산골 요한의 어머니인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방문을 받고 태 속에 아기가 뛰어놀았다는 표현(루카 1,39-45 참조)이 있습니다. 이미 태중에서부터의 만남을 통해 구원 역사가 이루어짐을 보아도 결코 어머니 품속의 시간은 소홀히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손가락이 10개인 것은 어머니가 나를 10개월을 품어 세상에 오게 되었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이를 한 살 줄이자는 2023년이 결코 생명 의식이 경시되는 해가 되어서는 안 되며 출산의 축복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시는 창조사업의 연장이며 협력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송영오 베네딕토 신부(제1대리구 상현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