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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기적은 우리 삶 안에 있다 / 안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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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청년성가대 지휘자를 맡은 지 12년째다. 지휘자로 들어가 한 달쯤 지났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단장이 어느 날 “지구 성가대회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약간 난감했다. 연습해 놓은 곡도 없었고, 너무 어려운 곡을 선정해 연습하기에는 시간도 짧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애니메이션 영화 ‘이집트 왕자’에 나오는 ‘When you believe’를 골랐다.

이 곡은 히브리인들이 모세와 함께 이집트인들에게서 벗어나 이집트를 떠날 때 부르는 노래다. 쉬운 멜로디와 드라마틱한 전개를 가진 곡이라 짧은 시간 안에 익히기에 적절해 보였다.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했고, 처음엔 큰 문제없이 진행됐다. 대회 당일에는 영화 장면을 틀어서 노래 내용과 정확히 맞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노래 클라이맥스 부분과 영상의 모세가 지팡이 드는 장면이 생각보다 잘 맞지 않았다. 나의 지휘자로서의 템포 조절 능력이 중요해졌다. 반복해서 부르다 보니 단원들은 힘들어했고, 나도 조금씩 지쳐갔다. 그래도 “조금 더 해보자”는 단원들 응원에 나는 힘을 내어 다시 한번 영상과 맞춰가며 지휘했다. 영상과 음악이 비슷하게 맞기도 했지만, 정확한 타이밍이 아니어서 계속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게 마지막 연습을 마쳤고, 이제 남은 건 모든 걸 주님께 맡기고 즐겁게 노래하는 것뿐이었다. 단원들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모두 비장한 각오로 무대에 올랐다. 피아노 선율의 차분한 전주를 시작으로 여성·남성 중창을 지나 혼성 합창의 아름다운 화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노래하는 경쾌한 부분이 나왔고, 우리는 모두 자유를 찾은 그들처럼 신나게 노래했다. 그리고 언제나 아쉬웠던 바로 그 부분, 영상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드는 순간이 왔다. 노래의 클라이맥스가 영상과 정확히 맞춰지는 기적 같은 순간이 휘몰아쳤다. 나는 순간 온몸이 찌릿한 것을 느꼈고, 단원들 표정에서도 벅차오름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우리의 노력과 집중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겠지만, 분명 주님의 도움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음정이 마쳐지고 노래는 끝이 났다. 사람들 박수 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는 무대를 내려왔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모두가 만족하며 행복해했다. 이 작은 기적의 체험은 단원들을 더욱더 끈끈하게 만들었다. 내게는 성가대 지휘자로서의 발걸음을 한 발짝 내딛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친구들과 함께할 성가대 생활을 무척 기대하게 됐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고, 그때 단원들은 거의 성가대에서 물러났다. 현재 단원들도 그들만큼 열정적이고 노래를 사랑한다. 적은 인원이지만 함께 모여 성가를 부른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살아 숨 쉬는 작은 기적이라는 것을 나는 느낀다.

There can be miracles, when you believe.

안장혁 필로메노
제2대리구 서판교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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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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