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저는 한 다큐 프로그램에서 6쌍의 부부들을 대상으로, 남녀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PD는 서로 처음 만나는 남편 6명으로 구성된 그룹에 ‘초콜릿’이라는 단어를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들은 서로 난색을 보였습니다. 초콜릿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요. 남자들은 목적이 없는 대화를 대부분 힘들어했습니다.
이에 반해, 생전 처음 본 아내들 6명에게 초콜릿이라는 주제를 던져주자, 별의별 이야기들을 쏟아냈습니다. 10대 시절, 밸런타인데이(Valentine’s Day)에 좋아하던 남자 친구에게 초콜릿을 주었던 에피소드부터 시작해서, 초콜릿이라는 단어를 매개로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남녀의 대화 방식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저는 작년 9월 말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수원 성 빈센트 병원에서 ‘임상사목교육’(CPE: Clinical Pastoral Education)을 받았습니다. CPE란 병원에 있는 환자의 돌봄자들(사목자, 원목자, 사회복지사, 의사, 간호사 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마치 의사들이 전문의가 되는 과정에서 인턴이나 레지던트를 거치는 것과 비슷합니다. 슈퍼바이저(Supervisor)의 지도 아래 영적 돌봄자 자신과 환자를 영적으로 돌보고 배우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바쁜 회사 일로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일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이 안쓰러워 기분을 풀어주려 합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여보, 내가 맛있는 브런치 가게 알아놨어! 이번 주말에 함께 먹으러 갈래?”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넌, 머릿속에 온통 먹는 생각뿐이지?”라고 되받아칩니다. 아내의 배려가 상처로 돌아오는 순간입니다.
아내의 바람은 남편의 스트레스 상황을 해소하고, 돌봐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의향과 상관없이 자신의 방법대로 남편의 어려움을 도와주려 했습니다. 이에 반해 남편은 아내의 의도를 읽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대로 아내의 말을 해석해서,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비난(분노)의 형태로 표출했습니다.
이런 수많은 특수한 상황들 속에서 CPE 교육은 상황을 직시하게 하고, 참된 돌봄이 무엇인지를 묻고 훈련하게 합니다.
CPE 교육을 받으면서, 제가 자연스럽게 의식하게 된 것은 ‘마음의 온도’였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오면, 그 환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무엇이 두려웠을까? 무엇이 저분을 저렇게 마음 아프게 할까? 환자들의 마음의 온도를 더 의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은 자연스럽게 제 마음의 온도를 묻게 했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 내 마음은 어땠지? 무엇이 두려웠을까? 무엇이 나를 화나게 했지? 묻게 됐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마음의 온도를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오늘은 안녕하셨나요?”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병원사목 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