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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안녕하세요! 예수님!! /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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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에 보좌신부로 있었을 때, 몇몇 어린아이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예수님!”

그럴 때면, 나는 당황해하며 그 어린아이들에게 말했다.
“예수님이 아니야! 신부님이야!”

그렇게 말해도 한 여자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한다. “근데요, 예수님!” 옆에 있던 남자아이도 맞장구를 친다. “근데요, 예수님!”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왜 그렇게 당황했을까? 그것은 내 모습이 예수님과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은 완전하시고 사랑 자체이신데, 나는 부족한 한 인간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왜 나를 예수님이라고 불렀던 걸까? 엄마가 예수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을까? 아니면 나의 부족한 모습 안에서도 그 아이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순수한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을까?

병원 원목 사제로서, 환자를 만날 때 두려운 경우들이 있다. 특히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들과의 만남은 내게 두려운 마음을 갖게 했다. 처음에 대화 없이 침묵 가운데의 만남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도 들게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넨다는 것이 내겐 쉽지 않았다.

한번은 신자인 위암 환자를 만났다. 그분은 60대 후반의 형제님이셨다. 내가 병실에 들어갔을 때 그분은 묵주기도를 바치고 계셨다. 그분은 나를 보자 활짝 웃으셨다. 나는 그분의 얼굴을 보자 내 안에 어둠은 사라지고 내 마음이 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분과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전체적으로 맑고 밝은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분은 내게 이러한 말씀을 해주셨다. “신부님, 저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요. 하느님 나라에 가서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죽은 우리 형제들을 만나면 기쁠 것 같아요. 단지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조금 있을 뿐이에요.”

그 형제님의 표정과 말씀이 내게는 예수님처럼 보였다. 너무 해맑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분과 대화하며, 이렇게 말씀드렸다. “형제님, 믿음이 참 좋으세요. 참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네요.” 그러자 그분이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신부님, 믿음이 좋은 것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에요. (하느님이) 계시니까 믿는 거죠!”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자신한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예수님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저 멀리 계시지 않고 당신 안에 계십니다.” 저 멀리 가 아니라, 내가 만나는 한 분의 환자분, 어린아이 하나와의 만남이 소중하다. “계시니까 믿는 거죠!”라는 형제님의 말씀과 그 표정이 이따금 떠오른다. 가끔 내게 “근데요, 예수님”이라고 불러주던 그 아이들이 그립다. 아이들을 만나면 예수님이 아이들을 안아주신 것처럼, 더 따뜻하게 놀아줘야겠다.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병원사목위원회 부위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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