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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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우리신학연구소, 스티븐 베반스 신부 ‘예언자적 대화와 시노달리타스…’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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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는 더욱 다원화되고, 다문화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세상 속에서 교회의 진리는 서로 다른 여러 가치관 중 하나 정도로 전락해버리곤 한다. 현대 세계 안에서 선교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방법을 취할 수 있을까.

선교학의 대가 스티븐 베반스 신부(시카고가톨릭연합신학대학원 명예교수)는 “선교는 대화”라며 ‘예언적 대화’를 강조한다. 또 그는 “예언적 대화의 실천, 즉 예언적 대화가 실제로 수행되는 방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교회를 계속해서 쇄신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안한 시노달리타스의 비전과 방법에 매우 가깝다”고 설명한다.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소장 최영균 시몬 신부)와 우리신학연구소(소장 이미영 발비나)는 스티븐 베반스 신부를 초청, 6월 12일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세미나실에서 ‘예언자적 대화와 시노달리타스-현대의 다원적이고 다문화적 세계에서 선교사명을 수행하기’를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대화

베반스 신부는 강연회에서 “오늘날 선교의 실천은 대화의 영성에 대한 깊고 철저한 헌신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회칙 「주님의 교회」에서 “인간의 구원 역사 전체가 하나의 파란만장한 대화”라고 표현한다.(70항) 세상의 창조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나자렛 예수님의 사명 안에서, 사도들의 활동 안에서 이 대화가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사도행전은 교회가 문화와 종교의 경계를 넘을 때 성령이 어떻게 초기 공동체를 인도했는지 보여준다.

베반스 신부는 “대화는 하느님이 언제 어디서나, 심지어 오늘날에도 역사하시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은 대화이시며, 거룩한 공동체와 성찬이라는 고정된 언어로 표현되고, 사람들의 삼위일체(친교적 일치)이며, 창조성과 자기 비움으로 넘쳐나는 관계의 춤”이라는 것이다. “온 인류와 모든 피조물과 대화하는 사명”이야말로 “교회의 과업”이다.

그래서 선교는 외방 선교(ad gentes)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선교(inter gentes)로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 사이의 선교는 다양한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의 종교와 관습을 인정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의 선교다. 이전의 선교사들이 이미 준비된 맥락과 정해진 답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면, ‘대화의 영성’을 바탕으로 한 사람들 사이의 선교는 오히려 제한이 없고, 유연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달하고 표현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에 열려 있도록 초대한다.

베반스 신부는 이런 태도가 바로 “예언적 대화 실천의 기초”라면서 “이것은 관상과 영성, 경외심과 놀라움의 태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예리한 경청, 관찰, 분석 및 식별의 실천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이 선교 방식에서는 사도직을 수행할 때 하느님의 은총은 어디에 머물지, 무엇이 필요할지, 복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교회 구성원은 아니지만 함께할 수 있는 이들은 누구일지 등 사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로 요구되는 것들을 성찰한다.

이런 성찰을 통한 대화는 사목자나 선교사가 사람들의 목소리, 특히 지역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도와줄 뿐 아니라, 사목자나 선교사 당사자들의 실천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도 만들어준다.
베반스 신부는 “이런 식별과 관상은 그리스도교의 성경적 증언과 교회의 교리적, 사목적, 전례적 전통과 연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예언적 대화와 시노달리타스와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베반스 신부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의 과정을 언급하면서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차이와 정체성을 통해 서로 자극받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그것이 시노달리타스의 모습”이라면서 “신앙과 문화의 풍부한 다원성이 인정되고 진정한 상호문화성이 실천될 때 비로소 시노달리타스”라고 말했다. 교회의 사명을 결정하는데 앞서서 교회의 모든 영역에서 대화, 경청, 진정한 만남을 하는 것이 예언적 대화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예언직

예언적 대화가 다른 대화와 다른 것은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종류의 예언자적 행동이 필요한지를 함께 발견한다는 점이다. 베반스 신부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예언적”이라는 말에 주목하길 요청한다.

예언이라는 말을 들으면 성경의 예언자, 혹은 예수님의 활동을 떠올리곤 한다. 나아가서는 폭력과 인권 유린 등에 반대하는 교회의 활동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베반스 신부는 “예언직은 훨씬 더 광범위한 현실”이라면서 “예언직이 항상 대립과 도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이사야가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사는” 세상을 노래한 것이나 예수님이 ‘되찾은 아들’로 자비와 죄의 용서를 비유한 것도 예언이었다. 베반스 신부는 “아시아 문화의 관점에서, 자연의 비극이라는 관점에서, 팬데믹 시대의 관점에서, 복음에 대한 명확하고 적절한 증거 또는 복음 선포로 예언을 이해할 수 있다”며 “진정한 토착화는 아름다운 음악, 전례를 발전시키고 거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언적 임무”라고 부연했다.

베반스 신부는 “(현대 세계의) 특별한 맥락에서 가장 예언자적 행위는 공동체가 자신의 사명을 염두에 두며 종교 간, 교파 간 그리고 세상과의 대화에 투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대화는 ‘삶의 대화’라는 수준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반스 신부는 “예언적 행동이라는 결과는 성찰과 식별이라는 기본 대화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베반스 신부는 “미얀마나 남수단의 폭력을, 코로나 팬데믹을, 자연재해를 마주하면서 희망의 말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식별할 수 있다”면서 “식별은 가짜뉴스가 만연한 상황에서 수행할 수 있는 진정한 봉사”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베반스 신부는 “우리 시대 교회가 마주한 접경은 공간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며,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배경을 공감하며 그들의 재능과 행동을 인정하는 상상력으로 선교에 임한다”면서 “시노달리타스는 예언적 대화의 실천에 의해 이뤄지는 관상, 식별 그리고 공동체적이고 상황적인 신학적 수행으로 열매 맺는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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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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