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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얼렁뚱땅 반주자에서 작곡가가 되기까지(2) / 손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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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특기가 뭐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피아노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만큼 피아노를 정말 좋아했고 실력도 있었습니다. 장래 희망은 당연하게도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할 무렵에, 피아노를 전공하기 위한 교육비가 집안 경제 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 뒤로는 피아노를 일부러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당에서 중고등부 밴드도 하고 성가대도 하면서 즐겁게 보냈지만, 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을 거라는 좌절감이 마음 한편에 늘 자리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로는 평범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무렵 제 삶에 음악이 있는 순간은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음악교실에 들르는 게 전부였습니다. 친구들이 이것저것 연주해달라 하면 음악실 피아노로 연주하곤 했는데 얼마 안 되는 그 시간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음악선생님께서 제 모습을 눈여겨 보셨는지, 어느 날 문득 “작곡 공부해서 대학 안 가볼래?”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가볍게 지나칠 수도 있었던 이 한마디는 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작곡과가 뭐하는 곳인지 몰랐습니다. 음악가가 되는 방법이라고는 오로지 악기 연주만 알고 있던 제게 작곡은 새로운 지평이었습니다. 주어진 곡을 연주하는 것을 넘어, 직접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화성’은 미사시간에 부르는 가톨릭성가와 같은 4성부의 짜임새를 배우는 것이며, ‘청음’은 성당 밴드에서 악보가 없는 곡을 연주하기 위해 음을 받아 적을 때 이미 해오던 것이었습니다. 미사 반주를 할 때 맘에 들지 않는 코드를 몰래 바꿔 연주하던 버릇은 ‘편곡’의 일종이었습니다. 성당에서 재미로 해온 단체 활동이 결과적으로는 작곡가로서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었던 것이지요.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신앙 공동체 안에 머무른 시간들이 곧 음악과 함께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좌절의 순간도 있었지만, 하느님께서 저를 신앙 안에 머무르며 끊임없이 준비하게 하시고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셨기에 음악가의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마태 24,44 참조)고 말씀하신 주님! 사람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없지만,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며 삶을 예비해주심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의 생활 가운데에,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함께하시는 주님께서 매일 하루를, 삶의 순간들을 어떤 형태로 예비해주셨을지 기대합니다. 아멘!

손희정 크리스티나
제2대리구 중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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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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