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암성지는 그 역사의 출발부터 특이한 점이 스님들 수도하는 절에서(佛敎), 유학의 성리학을 주로 하는 학자들이(儒敎), 참된 도를 추구하며 여러 학설을 검토하다가(道敎), 이 모든 것을 초월하고 포괄하는 참된 진리인 천주학을 발견하고 믿기 시작했다는 점이다.(天主敎)
그리고 이들은 어떤 권력자가 강제로 학설을 강요하거나, 거대 자본을 가진 자산가가 학자들을 매수해서 상업적 논문을 만든 것도 아니었다. 이상한 사술로 사람들을 현혹시킨 것도 아니었다. 권력에서 소외됐던 당시 남인 신서파 계열의 학자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당대 최고 지성으로 꼽히던 권철신 선생을 모시고, 치열한 토론과 연구를 통해서 찾아낸 결과이고 방향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이곳에서 그러한 역사적·문화적·종교 화합적인 의미를 새기는 작업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천진암성지의 모습은 이러한 바람이나 목표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돼있다. 백년대성전의 모습과 그 건축 방향이 잘못된 것임은 앞에서도 지적했거니와 현재 외적 조형물로도 너무나 엉뚱하게 높이 약 15미터라고 하는 ‘파티마 성모상’이 세워져 있다. 1917년 포르투갈에서 발현하신 파티마 성모님의 상을 정작 발현한 장소인 파티마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크기로 왜 하필이면 1779년을 기점으로 하는 한국 천주교 발상지인 천진암성지에 세워 놓아야 한단 말인가?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시간이 지났어도 불교계에서 계속 비난과 반발이 계속되고, 식견 있는 지성인들로부터 비판을 받으며 심지어 천주교 내부에서 더 나아가 같은 교구 내에서조차 공감을 못 얻고 오히려 외면의 대상이 돼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진암성지는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보배롭고 상서로운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산의 선중씨 또는 권철신 묘비명과 다블뤼 주교의 「비망록」 기록을 읽고, 이벽과 초기 선구자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조용히 천진암성지를 산책해보면 그 영감과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된 도(道)를 추구하는 커다란 이상(理想) 안에서 스님들과 유학자들이 한데 어울려 도학을 논하고 거기서 유교 성리학과 불교의 한계를 뛰어넘는 참된 진리인 천주학을 발견하고 이를 종교적 신념인 천주교의 신앙으로 발전시키고, 마침내 이 한반도 한민족 수천 년의 역사에 처음으로 참된 신앙의 불꽃을 타오르게 한 그 모습은 얼마나 신비롭고 장엄하며 또 길이 기념할 모습인가.
이 역사를 아는 많은 이들은, 우리 한국 천주교 믿음의 고향인 이 천진암 주어사 성지에서 그러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러한 의미를 되새기며 그러한 기운과 영감을 느끼기를 원하는 것이다. 30만 평의 천진암성지를 마련하고 중요한 창립 선조들의 묘를 모셔놓은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발전시키고 성화시켜나가지 못한다면 마치 우리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채택하고서도 군부독재나 유신독재와 같은 역사적 과오를 범하며 그 의미를 훼손시킨 것처럼 오히려 우리 신앙선조들이 추구한 참된 도(道)의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전합수 가브리엘 신부
제2대리구 북여주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