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아프리카 북부 사막을 여행하던 때였다. 저녁 어스름이 사막의 모래 언덕 듄(Dune) 너머로 황금빛으로 퍼져가고 있었다. 실루엣으로 변해 가는 듄의 능선은 무용수의 아련한 춤선처럼 단정하고 부드러웠다. 해는 금방 자취를 감추고 더위도 스스로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모래 언덕 아래 작은 텐트 모래밭에 주저앉아 아무 생각 없이 번져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때 백여 발자국 멀리 어두움 속에서 한 사람의 움직임이 보였다. 듄의 그림자 때문에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동쪽으로 서서 작은 헝겊을 모래땅에 깔고 무릎을 꿇더니 여러 차례 허리 숙여 절하였다. 얼른 보아도 그것은 무슬림들이 하루 다섯 번씩 하는 쌀라(Salat) 중 해질녘 기도인 마그립(Maghrib)이었다.
기도하던 사람은 우리 일행의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였는데 구릿빛 피부에 매우 선하고 맑은 눈빛과 반달처럼 둥글고 짙은 눈썹을 가진 30대 후반의 젊은이였다. 그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에게서 빛나는 청년의 모습과 함께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사는 안성 미리내 상촌마을은 200년 역사를 가진 천주교 교우촌이다. 마을에는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대부분 교우촌 시절의 노인들이거나 그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다. 마을 가운데에는 200여 평의 공원이 있고 입구에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마을의 노인 자매들은 지금도 거의 매일 일정한 시간이 되면 경로당에 모여 묵주기도를 드리며, 때로는 성모상 앞에서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지난 봄 선종하셨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 성모상 앞에서 휠체어에 앉아 고요히 기도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흔을 넘겨 언제 주님의 품에 안긴다 해도 놀랍지 않을 그녀의 모습은 은색 머리칼과 아주 작은 몸집, 구부정한 허리로 작은 휠체어 깊숙이 파묻혀 있다. 야위고 쪼그라든 육신이지만 성모상을 향한 그녀의 눈빛만큼은 맑고 선하며, 그녀의 기도하는 손처럼 순결한 손은 본 적이 없다. 세월에 순종하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한 점 티끌 없는 확신으로 당당해 보였던 그녀의 모습은 내겐 세상 어느 화가의 그림보다 아름다운 기억이다.
무슬림 청년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는 다르다. 기도하지 않는 무슬림은 결혼도 사회적 교류도 허락하지 않는 형식적 율법을 강요받지만, 천주교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내밀한 일대일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자유롭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날 어스름 속에 기도하던 그 청년의 모습이 기도에 게으른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정진 알렉시오
제1대리구 미리내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