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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정의가 충돌하는 사회 / 이상협 그레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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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正義)에 대해 많은 정의(定義)가 있지만, 저는 정의는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과연, ‘각자의 몫의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생깁니다.

우리가 익숙한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자본주의 사회가 말하는 각자의 몫은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합당한 결실이 자신의 몫으로 주어지길 바라지요. 하지만 남들보다 스스로에게 관대한 우리는 상대적으로 나의 몫이 적게 돌아오는 것에 대해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사회 안에서 각자의 몫은 사회가 정해놓은 평등분배의 원칙이 기준이 됩니다. 이러한 사회는 차별 없이 균등하게 분배되는 정의를 내세우며, 각자가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자신의 몫으로 인정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타인이 정해준 나의 몫을 합당하게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내가 분배활동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지는 것이지요. 계급과 차별이 없어야 하는 사회주의 안에 특권계층과 억압·착취가 더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정의는 무엇일까요? 곧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나의 몫으로 감사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나의 몫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께 맡기는 것이지요. 하느님께 정의를 두는 것은 곧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이며, 내 자신을 비우고 그분을 내 안에 채우는 행위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정의를 따르는 의로운 인물들이 나오는데, 그들 모두가 하느님이 주신 상황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원하고 계획했던 사건들이 아니었기에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들 모두는 끝까지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를 지켰습니다.

정의는 곧 하느님이시기에, 신앙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에 정의가 없을 수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계획과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뿐, 하느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단지 이 세상에는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는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느님 계획 안의 일부일 뿐,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우리가 세상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현대 사회는 오히려 개인의 기준으로 생겨난 너무나 많은 정의들이 서로 충돌하기에 모두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대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선포해야 할 정의가 무엇인지 되새겨봐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하느님이 아닌 나 중심의 정의를 외치면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아닐지요.

하느님께 나의 몫을 맡겨드리는 이들에게 정의는 언제나 살아있고, 삶 안에 감사와 희망이 있습니다.
이상협 그레고리오 신부
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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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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