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피었습니까?”
죽산순교성지는 오월이 되면 순교자관련 문의가 아닌 99는 장미꽃 피었느냐는 전화가 가장 많이 오는 곳이다. 하지만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오월의 빨간 장미가 개화될 무렵 이곳으로 많은 분들이 끌려와서 참혹하고 혹독하게 고문을 받으며 순교하셨다.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터’로 불리며 사형지로 사용되던 성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단지 신자라는 것만으로 순교하신 분들. 많은 신자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아픈 역사의 상처를 오월의 장미는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작년 5월 20일 죽산순교성지에서 가남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길은 한가로운 농촌 마을을 누비며 걷는 길이었다.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 새들의 지저귐, 청보리밭에는 제법 키가 자란 보리가 바람에 살랑이며 순례자들에게 미소 짓는 순례길, 흙 담벽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시골 인심을 보는 것 같다.
5시간 넘게 걸어 가남성당에 도착했다. “환영합니다!” 성당 앞마당에서는 초등부 아이들이 우리를 보면서 두 팔 벌려 환영해 줬고, 신부님께서 반겨주시며 강복에, 땀에 젖은 머리도 마다않고 안수까지 해주셨다. 더위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죽을 만큼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었고 포기하고 싶었던 오늘의 순례 여정이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뜨거운 경험을 하는 순간이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생각났다. 예레미야는 바빌론의 멸망을 선포하면서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놀림과 조롱을 받는 건 물론이며 대신들에게 붙들려서 매를 맞기도 하고 저수동굴에 갇혀서 오랫동안 감금되기도 했던 예레미야 예언자. 그럼에도 예언자로서의 자신의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했던 예레미야.
“그 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 20, 9)
그런 박해와 고통 속에서도 간직한 하느님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는 예언자를 보면서 하느님께 대한 소명 의식과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 느껴진다. 마치 우리 신앙선조님들이 장미꽃의 붉은 빛처럼 순교하셨던 그 시대처럼.
신앙선조님들을 묵상하며 온몸으로 기도하며 동행한 은총의 순례길, 걷고 기도하며 사랑하는 디딤길의 도보 성지순례로 하느님과 만나고 교감하는 시간이다. 그러면서 크신 하느님과 나의 간격을 잘 좁혀 나가는 순례길, 항상 두드리고 계신 그분께 나를 활짝 열어가는 여정이다.
글 _ 박수희 아녜스(교구 디딤길팀 책임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