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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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부엌 문지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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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일 시절, 강원도 삼척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집 입구에 부엌이 있었고, 그곳으로 들어가려면 제법 높은 문지방을 넘어야 했다. 문지방 옆에는 온수가 나오지 않는 수도와 옛날식 싱크대(?)가 있었다. 그 옆에는 조리를 할 수 있는 도구들이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놀만한 친구라고는 형제들밖에 없었다.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강 건너 읍내(?)에 살고 있었다. 지금이야 엉덩이에 뾰루지 난 것 마냥 앉아 있는걸 싫어하지만. 그때는 그다지 잘 나다니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집에 오면 부엌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 옆에서 종알종알 거리는걸 좋아했다.


부엌 문지방에 올라 쭈그려 앉아서는 어머니가 하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밥은 어떻게 하는지, 칼질은 어떻게 하는지도 알려주셨지만 주로 당신의 옛날이야기들부터 당신이 살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 그 안에서 얻었던 교훈을 이야기해 주셨다. 때로는 피정이나 성당에서 들었던 강론과 교육들. 당신이 읽었던 성경을 당신 삶에 비추어 이야기해 주셨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지금 내가 하는 강론의 자료가 된 적도 많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가르침을 주셨고, 비유로 이야기하신 날에는 제자들을 불러 모아 풀이해 주셨다. 그러고 보면 제자들이 세상에 나아가서 선포한 말씀은 주님께서 살아계실 때에 그분 옆에 앉아 들었던 것들이다. 들음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사람을 변화시킬 힘이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바오로 사도도 로마서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전해 들어 믿은 바오로 사도로서는 분명 그 들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도 참으로 들음을 잘하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이득이 되는 일에 관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학업 설명회든지, 재개발을 위한 정보 등에는 누가 떠밀지 않아도 찾아 듣고 귀담아듣는 세상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열정으로 신앙을 하고 있는가 반성해 본다.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 내 양심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말이다.


듣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 없고, 깨닫지 않고서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우리가 봉헌한 빵이 더 이상 빵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임을 깨닫는 것은 들음으로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쫑긋 새워 듣는 착한 자녀가 되면 좋겠다.



글 _ 문석훈 베드로 신부(수원교구 비서실장)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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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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