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된 어머니가 1년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으시자, 이때 저는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방문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나도 북한에 돌아가서 내가 중국에서 배운 지식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수를 하고 북한으로 귀국길에 나섰습니다.
저는 북한으로, 어머니는 중국으로, 우리 모녀는 또다시 엇갈리는 운명 길에 놓였습니다. 이렇게 운명의 엇갈림 속에 어머니는 2010년 중국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오셔서 2012년 북한에 있는 저를 찾아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뜻밖에 찾아온 어머니를 소식을 접하고 저는 너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당시 북한으로 돌아간 저는 12살 철없는 나이에 탈북했기에 형벌을 면할 수 있었고, 한 달 기간 조사를 받고 바로 의류제조공장에 취직해 일하게 됐습니다. 집단생활을 하면서 많은 감시를 당하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소식을 받으니 저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죠. 혹시라도 누가 알게 되면 저는 바로 형벌을 받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한 저는 위험을 감수하고 연락하신 분과 차후 연락을 계속 이어가면서 2차 탈북을 계획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을 알고 어머니는 한국에서 저를 위해 성당에 갈 때마다 신부님과 수녀님들, 그리고 같은 성당의 신자분들에게 저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고마운 분들의 정성 어린 기도가 하느님께 닿아 저는 2015년 9월 2차 탈북해 2017년 4월 대한민국에, 주님의 나라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어머니의 당부로 시작한 저의 신앙은 ‘찐 사랑’이 되어 제가 세례를 받고, 어머니와 함께 민족화해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제가 받은 사랑을 나눔으로써 더 큰 축복으로 제가 다가왔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은 제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 자유대한민국으로 오기 전까지는 저로 하여금 하느님이 정말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현실로 체험하게 해준 기회였기도 합니다.
신앙이 없는 저에게 먼저 사랑을 주시고, 그 은총으로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시고, 주님 안에서 제가 참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당으로 불러주시고 나가서는 주님의 복음을 서로 나누며, 나눔으로서 하나가 되게 해주셨기에 저는 가톨릭신자의 자녀와 신부님들과 수녀들의 축복을 받으며 성가정을 꾸렸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며 열심히 기도하시는 가톨릭신자들이 있기에 저와 같은 북향민들이 하느님을 알게 되고, 주님 안에서 행복한 새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 _ 허영희 알레나(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