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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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짐과 게으름, 뱃살은 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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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다가 들어오려니 짐을 대폭 정리해야 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짐을 펼쳐 놓으니 이것저것 참 많았다. 나눠주고 버리고 해도 이건 뭐 보따리 장사꾼이다. 어찌저찌 짐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와 국내수학 시간을 가졌고, 마침내 뜻밖의 소임을 받아 교구청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동하는 전날까지 짐을 싸고 정리하는데 역시나 그동안 내 짐들이 새끼를 친 것인지 많이 늘어나 있었다.


인사이동 날 아침, 승용차에 정리해 둔 짐을 모두 싣고, 교구청에 들어왔고, 마중 나온 신부님들과 인사를 하는데 어느 신부님이 나에게 물었다. “짐은 아직 안 왔어?”라고 말이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니 이제 막 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용히 방 한쪽에 내 짐을 두고 나왔다. 점심을 먹고 방에 돌아왔을 때, 청소를 마친 자매님이 “신부님 이제 짐 가지고 들어오셔도 돼요”라고 하셨다. 이렇게 짐이 없는 신부로 교구청에 들어왔는데, 반년이 넘어가니 나의 짐들이 스멀스멀 세포분열을 했다. 점점 늘어나는 뱃살만큼이나 짐들이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더 이상 하고 있지 않는 일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물건이 생기고, 그래서 몸이 편해지면서 그만큼 부지런을 떨지 않게 됐던 것이다. 수고로움을 줄이고 편해지기 위해서 그만큼 많은 것들을 구입했으니, 몸이 게을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게을러지니 그렇지 않아도 불어있는 몸이 더 불어나게 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짐과 게으름, 그리고 뱃살은 비례한다’라는 공식이다.


이 공식을 알게 된 뒤에 읽은 성경 말씀은 나의 뼈를 때렸다. 어느 날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당부하신다. 빵도 여행 보따리도 지니지 말라하시며 다만 고을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선포하라는 대목이었다. 그렇게 제자들은 아주 기본적인 물품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채 파견됐고, 여러 경험을 한 뒤에 예수님께 모여와 자기들이 겪은 일을 자랑스럽게 털어놓았다.


제자들이 가진 것이 많아 몸이 편해지고 게으름에 빠지면 예수님처럼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말씀을 선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편해진 몸을 지키느라 자신들의 사명을 소홀히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편한 세상이다. 과거에는 상상만 해왔던 일들을 정말 쉽게 할 수 있고 또 쉽고 편하게 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신앙은 결코 그렇게 편하게 할 수 없다. 주님을 따르는 일에는 반드시 수고와 땀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세상이 주는 편안함과 계속해서 편안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져있는 것 같다. 아마 코로나19 이후에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도 그 편함에 빠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의 짐과 편안함이 늘어난다며, 신앙의 뱃살이 늘어날지 모른다. 그 뱃살은 나의 영혼을 못나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짐과 소유를 조금씩 내려두고 건강한 영혼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글 _ 문석훈 베드로 신부(교구 비서실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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