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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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순교자 유해 앞에서, 부활의 영광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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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성월, 우리는 특별히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순교자들에게 전구를 청하고, 순교자들이 보여준 신앙을 따르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교회는 특별히 순교자들의 유해를 공경함으로써 더욱 각별하게 순교자들에게 전구를 청하고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고자 하고 있다. 이번 순교자 성월, 교구 내 성지를 순례하며 순교자들의 유해 앞에서 기도하면 어떨까.



■ 성인 유해 공경


초대 교회 시절부터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다 목숨을 바친 그리스도인, 순교자들을 성인을 공경했다.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무덤을 찾아 미사를 봉헌했고, 기도와 더불어 순교자들의 행적을 낭독하며 순교자들의 증거를 되새겼다. 특히 신자들은 순교자들이 순교한 날을 거룩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참된 탄생의 날로 여겨 순교자를 기념하는 날로 삼았다.


순교자를 공경하기 시작하면서 순교자들이 유해도 공경의 대상이 됐다. 성인들의 유물과 유해에 대한 공경은 성경에도 바오로의 살갗에 닿았던 수건(사도 19,12), 승천한 엘리야의 옷(2열왕 2,14), 엘리사의 뼈(2열왕 13,21)를 통해 일어난 기적들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성 예로니모는 “고통을 받아 순교한 거룩한 몸”이라고 성인의 유해를 설명하기도 했다.


순교자 공경이 확산되면서 교회는 유해를 성당에 모시기 시작했다. 유해를 성당에 안치함으로써 신자들이 순교자들을 더 가까이서 공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처음에는 유해를 그대로 보존했지만, 신자들은 점차 유해를 나눠 모시기 시작했고, 7~8세기 무렵에는 유해를 분할해 안치하는 일이 허용됐다. 787년 제2차 니케아공의회 교부들은 모든 교회가 반드시 성인의 유해를 모신 뒤 축성돼야 한다고 천명했다.


성인들의 유해 공경은 오랜 역사 속에 이뤄져왔지만, 성인들의 유해 공경에 관한 규정은 1563년 트리엔트공의회를 통해 확정됐다. 트리엔트공의회 「성인들의 유해와 성화상에 관한 교령」에 따르면 “거룩한 순교자들의 거룩한 유해와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지체이자 성령의 궁전이었으며 그리스도에 의해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여 영광을 받게 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이들의 성해 역시 신자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한다”면서 “그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더 가까이서 순교자 공경하기 위해 성당에 유해 모시기 시작
구산성지·남양성모성지·남한산성순교성지 등 교구 내 성지들
성인·복자들 외에도 무명 순교자 묘역 등 곳곳에서 유해 공경



■ 교구의 성인 유해 공경


박해 시기 수많은 신앙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해 온 순교자들의 땅인 교구에서도 성인 유해를 공경하는 많은 활동이 있어 왔다.


신자들은 자신의 목숨도 위태로운 박해 속에서도 순교자들의 유해를 찾아 수습하며 순교자의 유해를 지켜 왔다.


특별히 신앙선조들은 회장직을 수행하던 순교자들, 사제 순교자 등 교회의 모범이 된 순교자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대대로 지켜오며 그들의 모범을 기억하는 일을 끊임없이 이어 왔다. 그래서 교구 곳곳에는 순교자들의 유해가 묻힌 땅도 많다.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한 미리내 교우촌 신자들의 노력은 유명하다. 미리내 교우촌의 이민식(빈첸시오)은 김대건 신부 순교 40일 만에 포졸들의 눈을 피해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한강 새남터 모래밭에서 빼어냈고,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5일 동안 험한 산길로 시신을 옮겨 미리내에 김대건 신부를 안장할 수 있었다.



각각 수리산과 구산에 교우촌을 일구고 회장으로 일해온 성 최경환(프란치스코)과 성 김성우(안토니오)도 마찬가지다. 교우촌 신자들은 순교한 자신들의 회장의 시신을 각각 수리산과 구산에 안장하고 유해를 지켜왔다. 파평 윤씨의 선산인 어농성지에는 복자 윤유오(야고보)의 무덤이, 단내 교우촌이 있던 단내성지에는 하느님의 종 정은(바오로)의 무덤이 있다.


오랜 시간 속에서도 순교자의 유해를 지키기 위해 교구로 이장한 일들도 있었다.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유해는 순교 후 그의 고향인 마재 인근의 윗배알미 검단산 기슭에 묻혔다가, 100여 년이 흐른 후 정약종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안산 사사동의 선산(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61)에 이장됐다.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진 묘소를 더 정성껏 돌보기 위해 이장했던 것이다. 현재 정약종의 묘는 천진암성지에 자리하고 있다.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한 성 이윤일(요한)의 유해도 1900년대 경부선 철도가 착공되면서 묘지가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이윤일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먹방이(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리 산 32-1)로 유해를 옮겨 묻었다.


성인·복자들 외에도 순교자들의 무덤은 곳곳에 있다. 양근성지에는 순교자 권복(프란치스코)의 묘소가 있고, 미리내성지와 손골성지에는 무명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신 무명 순교자 묘역이 있다.


교구 내 성지들은 순교자들의 유해를 성지에 모시고 성지를 순례하는 이들이 유해 앞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교구 내 성지에 안치된 순교자들의 유해는 ▲구산성지에는 성 김성우 ▲남양성모성지에는 성 모방 신부, 성 다블뤼 주교 ▲남한산성순교성지에는 성 최경환, 성 김성우 ▲단내성지에는 성 김대건 신부 ▲미리내성지에는 성 김대건 신부, 성 페르페투아 ▲손골성지에는 성 오메트르 신부, 성 다블뤼 주교 ▲수리산성지에는 성 최경환, 성 김성우 ▲수원화성순교성지에는 성 김대건 신부, 성 최경환, 성 김성우,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 ▲어농성지에는 성 김대건 신부 ▲요당리성지에는 성 장주기(요셉) ▲은이·골배마실성지에는 성 김대건 신부 ▲죽산성지에는 성 김대건 신부,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 ▲천진암성지에는 성 정하상(바오로) 등이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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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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