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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세월호’ 설치물 이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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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가톨릭대 총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외부에서 연락이 왔다. ‘세월호’ 관련 설치물들이 폐기될 위기인데, 수원가대의 협조를 바란다는 것이다. ‘십자가’와 ‘성호경당’이 한순간에 폐기될 위기를 겪게 되면서 관련 단체와 유가족들이 단원고가 있는 수원교구, 특히 신학교로 이전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고 신학교의 의사를 타진해 온 것이다.


경당과 십자가가 졸지에 거리로 나앉게 됐다는 말을 듣고, 안타깝기도 하고 급한 것 같아서 일단 구두로 수락해 놓고, 동료 교수 신부님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동의를 구했다. 다행히 대부분의 신부님들이 찬성해 경당과 십자가를 무사히 신학교에 모시게 됐다.


먼저 팽목항을 지키던 ‘세월호 십자가’는 2017년에, 안산 합동분향소를 지키던 ‘성호경당’(예비신학생인 고(故) 박성호 임마누엘을 기념)은 이듬해인 2018년에 옮겨 모심으로써 일단락돼, 마음이 얼마나 평온했는지 모른다. 신학교 못자리를 오가는 신학생들이 세월호 참상을 눈으로 보면서 묵상하고 기억할 수 있게 됐다.


더러는 따지면서 반대한 신부도 있었고, 몇 번씩 전화하면서 불만을 토로하다가 안 되니까 제풀에 꺾여 연락을 두절한 신부도 있었다. 아마 거룩해야 할 신학교의 특성상 외부의 물건들로 채워지는 것이 영 못마땅했으리라. 이해는 되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보면 솔직히 안타까움이 더 컸다.


나로선 그때의 일이 시대의 징표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지금도 이것은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더구나 미래의 사제들이라면 주변의 아픔과 고통을 늘 함께 하지는 못하더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작은 신념이 모든 절차를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박성호 군의 단짝이었던 친구 심기윤은 현재 수원교구 부제로 신학교에서 살고 있어서 감회가 더욱 남다를 것이다. 볼 때마다 기도로 함께할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고 본다.


모름지기 사제는 사람들이 겪는 아픔을 결코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되며, 함께 고통을 짊어질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도 10년째다. 하필 배 이름은 또 ‘세월호’인가. 세월은 가도 기억은 남는 법인데. 매년 4월이면 소수의 사람들이 유가족들과 함께 와서 조촐한 묵상회를 갖는다.


톨스토이가 발견하고 평생 흠모했다는, 간디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는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멋진 책에서 저자 H. D. 소로우는 말했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나라의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과 무책임을 보면서 우리에게 하는 말이라고 본다.


공자는 자기 제자가 ‘부끄러움’에 대하여 묻자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과, 나라에 도가 없을 때 봉급만 받고 지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논어 14편 1)이라고 했다. 세월호를 떠올리면 이 나라의 국민 된 것이 수치스러운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암담하기만 하다.



글 _ 유희석 안드레아 신부(제1대리구 구성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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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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