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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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한국 그리스도인과 기복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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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재수가 없다’거나 ‘운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무슨 날만 되면 운세점을 보는 이들이 폭주한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땐 더 극성을 부린다. 요즘은 인터넷점도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접속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가톨릭신자라고 예외가 아닌 듯하다. 지난 2003년에 발간한 - 지난 통계지만 지금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 - 「천주교와 한국 근·현대의 사회문화적 변동」에 따르면,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곳”으로 자신의 종교를 지목한 수치에서, 개신교(73)와 불교(51)에 비하여 가톨릭이 가장 낮은 수치(27)를 보였다. 이는 특히 가톨릭신자들이 자기 믿음에 대한 소신이나 확신이 상당히 적거나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신앙인으로서 삶이 소극적이고 자긍심이 부족하다는 말과도 통하는 것이어서 안타까운 지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철학관이나 사주나 점 풀이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실제로 가톨릭신자들의 사례를 들어보면, “좀 꺼림칙하긴 하다. 그래서 점보고 나면 꼭 고해성사를 본다”고 하면서, “100 다 믿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이 후련해져 해답을 얻고 싶을 때마다 점집을 찾는다”는 것이다.(가톨릭신문 2008년 6월 8일자) 이는 신앙의 기복적인 측면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현상은 뭔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될 때 혹은 기존 종교나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상태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할 때 더욱 그럴 것이다.


여기에 관하여 사제의 입장에서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은 누구나 있는 것인데, 그 해결을 찾는 데 있어서 하느님 안에서가 아닌 교회 밖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느님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사도 7,32)이라고 하신 것은 하느님은 항상 ‘살아있는 사람의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은 누구보다도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시고, 그들에게 힘주기를 바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런 기복행위가 윤리적이냐 아니냐(죄의 유무)를 따지기 이전에, 그런 행동이 자신의 건강한 신앙을 흔들거나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피해야 하며, 누구보다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사람의 말)을 믿기보다 하느님(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믿어야 한다. 사실 신앙에는 왕도가 따로 없다. 그저 학생이 학교 가듯 하느님을 찾아가야 하며, 학생이 공부하듯 기도해야 할 뿐이다. 더 이상 주위를 두리번거릴 것도 눈치 볼 것도 없다. 한눈팔지 않고 자기 신앙에 애착을 갖고 매진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이다.



글 _ 유희석 안드레아 신부(제1대리구 구성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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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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