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주어진 소임은 장애인 사목이지만, 사는 곳은 ‘평화의 모후원’이라는 양로원입니다. 경로 수녀회로 잘 알려진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가 운영하는 무료 양로원에 거주하면서 매일 아침 미사를 봉헌하는 성사 전담 사제로 살아가고 있지요. 1839년, 프랑스의 잔 주강 성녀께서 구걸하던 할머니 한 분을 보살펴드리기 시작한 일부터 시작된 양로원 유일 사도직의 작은 자매회는 현재 31개국 159개의 양로원에서 약 9000명 넘는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수원, 서울, 전주, 담양 총 네 곳의 분원이 있는데, 제가 사는 수원 평화의 모후원에는 여덟 분의 수녀님들과 여러 직원들이 50여 분 넘는 어르신들을 마음 다해 모시고 있습니다.
작년은 작은 자매회가 한국 진출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습니다. 주교님을 모시고 감사미사를 드릴 때, 수녀회에서는 자신들을 상징하는 ‘바구니’ 하나를 봉헌 예물로 준비했습니다. 국가의 도움 없이 오직 후원과 모금으로만 운영되는 이 무료 양로원에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모금 바구니이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로 모든 것을 결제하는 이 편리한 시대에 직접 현물을 받아오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시겠지만, 실제로 수녀님들은 아직도 매주 수요일마다 인근 시장으로 모금 활동을 나가십니다. 남는 채소, 가치가 떨어진 과일 등을 직접 ‘구걸’하는 일이야말로 잃어버릴 수 없는 수도회의 정신이자 영성인 까닭입니다.
구걸(求乞). 남에게 무엇을 거저 달라고 비는 일입니다. 단어 그 자체로 이미 가난함을 내포하고 있기에 대부분은 멀리하고 싶은 단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도회의 이름 안에 ‘가난’을 새긴 수녀님들은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 그 구걸 행위를 오히려 자발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빌어오고 빌어 주는 이 작은 이들의 내어줌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뚜렷하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침, 출근을 앞둔 저에게 한 수녀님께서 다가와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지금 로비로 한 번 가 보셔요.” 입구 한 구석에 쌀 포대가 한가득 쌓여있는 것을 보고 누가 이렇게 많은 쌀을 보내주신 것인지 여쭤보니 수녀님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셨습니다. “누군지는 몰라요. 하지만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것은 분명해요. 호호호~”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요셉 성인께 전구를 청하는 것이 ‘직빵’이라며, 성당 요셉 성인상 아래에 기도 쪽지를 넣어보라 권하시는 수녀님들. 우리 수녀님들의 순수하지만 강한 믿음을 마주하며, 늘 인간적인 고민과 걱정으로 한숨 쉬면서도 정작 하느님은 때때로 잊고 사는 저를 다시금 성찰해 봅니다.
메마른 세상이라 하지만, 여전히 살아갈 만합니다. 의인들이 곳곳에 숨어 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친구를 위하여 빵을 구하려고 열심히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 이 두 마음이 모인 곳에 하느님께서 머무르십니다. 여러분들이 계신 곳에는 어떤 마음들이 모여 있나요?
글_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