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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아시시에서 내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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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전, 처음 간 해외 성지순례지는 이탈리아였다. 로마공항에 내려 순례지를 향해 갈 때, 살랑대던 양귀비꽃의 환대가 눈에 선하다.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를 주제로 떠난 순례였다. 사부님의 일화를 엮은 「잔꽃송이」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스도를 몹시 닮은 성인을 발견하고, 감동에 못 이겨 재속프란치스코회에 입회했다. ‘프란치스코 영성학교’도 일 년 공부한 후, 사부님 영성의 향기에 취해, 순례길에 올랐다.


첫 여정은 ‘바뇨레죠’였다. 1221년 이곳에서 태어난 보나벤투라는, 프란치스코회 제2의 창시자요, 덕망 높은 신학자요, 철학자셨다. 바뇨레죠의 지형은 분화구처럼 우뚝 솟아 있다. 위인 중에는 그의 사상이 생가터와 닮은 분들이 많다고 하는데, 성 보나벤투라도 그러하다. 성인의 신학과 철학에서 엿보이는 그리스도 중심의 원형사상은 사랑의 일치를 이룬 둥근 분화구를 닮은 듯했다.


생가터를 다 돌고 내려오던 중, 갑자기 발목이 360도 회전해 푹 주저앉았다. 몹시 심한 통증으로,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날개 없는 천사 한 분이 오셔서, 등을 내밀었다. 염치는 없었지만 업힌 채 숙소로 왔다. 잠시 후, 한국 수녀님께서 휠체어를 가지고 오시더니 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원에서의 진단은, 인대가 심하게 다쳤다며, 한 달 동안 목발을 짚고 다니라 한다. 오! 마이 갓, 한국으로 도로 가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에 아름다운 아시시는 안중에 없었다. 수지침 잘 놓는 형님이 생각나 친절하신 미리암 수녀님께 여쭸더니, 부황을 찾아오셨다. 곤경에 처하자 예비해 주신 주님, 성모님, 사부님, 천사들께 감사했다. 그날 밤 사정없이 찌르는 수지침에 내 발은 벌집이 되었고, 뭉글뭉글 나오는 핏덩이를 보신 예수님은 울고 가셨다.


이튿날, 일행들은 아시시 일대를 순례하러 떠났다. 사부님과 대화를 나눈 새인가, 창가에 앉아 위로하듯 구슬피 울어 댄다. 나도 같이 울다가 사부님의 성서 신심이 떠올라 성경을 펼쳤다. ‘히즈키야의 발병과 치유’(이사38,1-22)의 말씀이 내렸다.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히즈키야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말씀하셨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히즈키야와 꼭 같은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통곡했다.


발병이 나고 사흘 뒤, 주님께서 히즈키야와 함께 내 발목도 치유해 주셨다. “주님은 나를 구하시는 분. 우리 한평생 모든 날에 주님의 집에서 현악기 타며 노래 부르세.” 히즈키야의 찬미가는, 순례 내내 나의 찬미가가 됐다.



글 _ 김경자 엘리사벳(수원교구 제1대리구 신남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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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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