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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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이신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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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나는 아버지의 무기력해진 모습에서 소리 없는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했다. 세상일은 맘먹은 대로 되지 않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한 가장으로서 느끼셨을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나도 목이 메여왔다. 꿈꾸었던 가정생활이 아니었을 테다. 이 세상에 건장한 한 남자로 태어나서 어느 누구도 실패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을 거다.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는 듯이 패기 넘치게 세상을 마주하셨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온몸에 힘을 빼고 당신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계신 것처럼 보였다. 2000년 전에 십자가 위의 예수님처럼 말이다. 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십자가 위에서 한 호흡 한 호흡마다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골고타 언덕에서는 예수님도 실패자, 낙오자, 조롱받는 이의 모습을 하고 계셨다.


예수님은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나에게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여주셨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새로운 방식으로 아버지를 사랑해 드리기 시작한 것이.


아버지가 샤워를 하고 나면 욕실은 한바탕 난리가 나 있다. 그러니 그다음으로 욕실에 들어서는 것은 절대로 유쾌한 일이 될 수 없다. 나에게도 이는 아주 거북한 일이었고, 심지어 아버지가 싫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날도 사방으로 물이 튀어있고 수건이며 비누, 어느 것 하나도 제 자리에 놓여 있지 않았다. 축축한 슬리퍼와 불쾌한 냄새는 신경을 자극해 뇌를 마비시켜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욕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 어떠한 불평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의 허물을 내가 덮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식구들보다 내가 먼저 그 현장을 목격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그날 그 욕실에 서 있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가 있을까! 내 마음에 뜨거운 무언가가 나의 몸을 즉각적으로 움직이게 했다. 즉시로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비누 거품을 씻어내고 물기를 닦아내고 욕실을 청소했다. 어머니가 청소하시게 미뤄둘 수 없었던 것이다. 말끔해진 욕실을 보면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앞으로 극복하지 못할 것이 없을 듯 한 희망이 솟아났다.



글 _ 안현정 소피아(수원교구 제1대리구 용인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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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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