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무언가를 선뜻 나서서 시도하거나 위험을 감수하고 선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소심한 성격 덕에 인사이동이나 큰일을 앞두고는 걱정이 앞서고 불안이 커집니다. 막상 한 발 내디디면 괜찮은데도 쉽사리 불확실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도통 적응되지 않습니다.
가급적 안전한 곳에 머물길 바라는 저의 어리숙한 마음을 저는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요? 새순과 꽃망울이 무수히 올라오는 이 계절에서 정답을 찾아봅니다. 요즘 나무 끄트머리를 유심히 바라보면 같은 나무라도 어떤 가지는 꽃을 피우고 어떤 가지는 아직도 봉오리 속에 자신을 가둬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피지 않고 숨어 있는 꽃망울을 볼 때면 제 부족한 모습이 떠올라 괴롭기도 합니다. 시 한 편을 나누고 싶습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 꽃을 피우는 위험보다 / 봉오리 속에 / 단단히 숨어 있는 것이 / 더 고통스러운 날이.”(<위험> 엘리자베스 아펠)
단단히 숨어 있기를 잘하는 저인지라 시에서 봉오리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안전한 곳에 머무는 것이 과연 안전한 행동인지 미련한 행동인지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봉오리는 말라서 죽을 뿐입니다. 나를 위해 위험을 선택해야만 하는 시간, 참으로 괴로운 시간입니다.
이 상황을 해소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성경구절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필리 1,6)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말을 신자들에게 건넬 때 핵심은 ‘희망’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께 희망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면 신앙의 여정에서 표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유독 불안하고 힘들었던 때를 성찰해 보니 그 순간들에는 하느님에 대한 희망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좋은 일을 시작하셨고 그 일들을 통해 나 또한 친히 완성해 주실 것임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시편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 주님을 경외하여라, 그분의 거룩한 이들아. 그분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없어라. 사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들에게는 좋은 것 하나도 모자라지 않으리라.”(시편 34,9-11)
시편의 구절을 통해 주님께서 제 삶에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일들을 되새겨봅니다. 그분이 저를 얼마나 성실히 사랑해 주셨는지 돌아볼수록 제 마음속 불안이 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나약하기에 봉오리에 종종 숨어 있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고통스럽고 괴롭겠지만 주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며 세상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이들 모두 주님 안에서 희망을 놓지 않고 나아가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글 _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2027 WYD 수원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