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사진도 못 찍었는데 비바람이 불어서 서운하신 적 있나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벚꽃을 못 본 사실이 이번 한 해를 힘들게 하지는 않습니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서면, 우리는 지나간 순간이 아닌 지금에 머무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곡우(穀雨)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봄비는 우리가 놓치고 싶지 않은 벚꽃보다 훨씬 더 소중합니다.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라는 절기에서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마음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힘들 때마다 되새기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8) 예수님과 니코데모의 대화에서 나오는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에어콘 바람, 히터 바람, 선풍기 바람이 아닌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을 천천히 마주하고 느꼈을 때 저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조금 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바람은 너무나 차가워서 쓰리고 아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바람은 너무나 뜨거워서 짜증나고 힘들기도 합니다. 어떤 바람은 너무 시원해서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떤 바람은 너무 포근해서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나의 기호에 따라 그 바람이 좋은 바람인지 나쁜 바람인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바람에 따라 곡물이 자라고 대지가 풍요로워지는 것을 바라보면 필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음을 깨달을 수는 있습니다.
그 바람이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 답답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그 바람이 지금 내 곁을 지나가고 있음을 되새깁니다. 살다 보면 미련이 남고 후회가 생길 수도 있고 지금에 만족하지 못할 때도 있겠지만 지금 내가 머무르는 이곳은 우리에게 언제나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태어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옹졸한 마음이 아니라 충만한 의미를 주시는 하느님을 기다리며 넓은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간다면 모든 순간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울까요? 벚꽃을 제대로 못 보았다고, 일확천금의 기회를 놓쳤다고 슬퍼하지 맙시다. 아쉬워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은 넘치기 때문입니다.
비바람이 불고 난 자리에 올라온 희미한 초록색 잎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마치 나무들이 봄바람을 환영하기 위해 기립박수를 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조용한 나무들이 온몸으로 계절을 표현하는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모든 자연의 풍경은 머무를수록 아름답고 신비롭습니다. 자연의 흐름 안에서 그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도 언제나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글 _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2027 WYD 수원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