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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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34)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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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저는 주일학교 교사입니다. 교리시간에 한 아이가 질문했는데 답이 떠오르지 않아 문의 드립니다. 아이의 질문은 `예루살렘은 주님을 죽인 도시인데 왜 지금까지 멸망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런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주님을 죽인 도시인데 왜 멸망하지 않고 오히려 수많은 사람이 그곳에 성지순례를 가서 주님을 죽인 후손들을 먹여 살리는 것을 하느님께서 허용하시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요?

A. 당연히 그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잊지 않으셔야 할 것은 주님께서는 당신이 사람들에게서 받은 아주 작은 호의도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형제님은 혹시 귀한 손님이 올 때 자기 양복을 의자에 깔아놓고 앉으라고 할 수 있나요?
 
 아무리 귀한 손님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대 예루살렘 주민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서 나귀 등에 걸쳐놓고 주님을 그곳에 올라타시게 하고 심지어는 겉옷을 길에다 깔아놓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마치 왕이 입성할 때의 장면을 연출한 것입니다. 그들에게서 겉옷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겉옷은 둘러 입고 다니는 것임과 동시에 잘 때는 덮고 자는 생활필수품이었습니다. 그런 중요한 것을 주님이 사용하도록 내놓은 것을 보면 이들이 주님께 가진 마음가짐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을 최상으로 존중해드린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후손들이 수많은 죄와 업보를 만들어 살고 있어도 주님께서는 조상 덕을 봐서 용서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어떤 영성가는 "신앙생활의 이치는 간단하다. 인간관계가 존중해주면 존중받고 무시하면 무시당하듯, 신앙생활 역시 주님을 존중해드리면 그만큼 주님으로부터 은총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존중해드려야 할까요? 제가 몇 해 전에 북한산을 오르다가 무당이 굿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궁금해서 무슨 굿이냐고 물었더니 무슨 목적 없이 그냥 자기가 모시는 신을 즐겁게 해 드리려고 하는 굿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상차림을 보니 그야말로 지극정성이더군요. 돈도 아주 새 돈에 먹을거리도 아주 신선한 것들을 올려놓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도 주님께 저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주님께서 우리뿐만 아니라 후손에게도 복을 주시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Q2. 후회막급이에요
 저는 시장에만 가면 두렵습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아닌데도 사게 되는 습관 때문입니다. 물건 구경을 하러 가게에 들어가면 이상하게도 점원들이 저를 자꾸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해서 저도 모르게 아무 생각없이 카드를 긁고 집에 와서 후회하고 머리를 쥐어뜯습니다.
 
 지난번에도 아주 예쁜 옷을 만지면서 구경하는데 점원이 "아주머니 만지지 마세요. 그거 아주 비싼 거예요"하며 위 아래로 훑어보는 바람에 울컥하는 심정으로 그만 거금을 주고 옷을 샀습니다.

 남편에게는 말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고 그냥 옷장 안에 뒀는데 꺼내볼 때마다 속이 상합니다. 저는 왜 이렇게 바보처럼 살까요? 어떻게 해야 이런 버릇을 고칠 수 있을까요?

 
A. 그동안 입지도 않는 옷을 사셨으니 얼마나 마음이 많이 힘드셨을까 짐작이 갑니다. 자매님께서 그런 행동을 하신 것은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것이니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매님 문제는 다른 게 아니라 자존감의 양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자존감이란 자기존중감 즉, 내가 나를 존중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존중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이 무슨 큰 사람이 된 듯한 뿌듯한 마음을 갖습니다.
 
 이런 자존감이 처음 생기는 것은 어린시절 부모님에게서 존중 받는 일에서부터입니다. 그런데 어린시절 부모님에게서 존중을 받지 못해 자존감의 양이 부족할 경우 여러 가지 심리적 부작용에 시달리게 됩니다.
 
 즉, 다른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기 위해 버거운 일을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무시 당하면 머리 속 생각들이 다 날아가버리고 욱하는 감정에 쏠려 하지말아야 할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약아빠진 점원은 이런 약점을 이용해 물건을 파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일을 저지르고 난 후에 자기 자신을 바보라고 자학하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위로하고 자매님을 속인 점원의 그림을 그려놓고 마음이 풀릴때까지 발로 밟는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속이 좀 후련해지고 마음 안에 작은 자존감이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자기비난과 자기학대는 절대 금물입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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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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