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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 보존연구실장 김주삼(루치아노, 48)씨는 문화재(미술품) 보존 전문가다.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8년간 그 분야를 전공했다. 귀국한 뒤 가톨릭 신자로서 교회 문화유산 보존 현황도 이따금 들여다봤다. 도움말을 듣고 싶어 그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 교회 문화유산은 신앙 공동체의 삶, 역사, 정신"이라고 강조하는 삼성미술관 리움 보존연구실장 김주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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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박물관은 교육과 선교의 장
"한국교회 224년 역사는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문의 200년 역사는 고사하고 조부와 증조부대 역사도 제대로 모르잖습니까. 그러니 224년 역사가 얼마나 장구한 세월입니까. 이제 한국 가톨릭을 대표할만한 박물관을 지어 그 역사를 보존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박물관(유물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절두산 순교박물관부터 수도회들의 기념관까지 크고 작은 박물관이 수십 곳에 이른다. 신앙 선조들의 손때 묻은 유물도 많다. 하지만 그는 반문한다.
"교회 박물관은 보물창고가 아니라 교육과 선교의 장이 돼야 합니다. 사목자와 주일학교 교사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순교박물관에 몇 번이나 가봤는지 묻고 싶습니다. 또 미신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박물관이 몇 군데나 있습니까."
그는 "문화유산은 삶이자 역사이고, 정신이다"며 "국민들이 숭례문 화재에 가슴 아파하는 이유는 목조 건물 하나 불타 없어져서가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역사와 정신이 사라져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 가치를 깨달으면 목 좋은 대로변에 성당 대신 박물관을 지을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다"며 "교통 편리한 곳에 한국교회의 200년 삶과 역사를 보여주는 번듯한 박물관이 세워지면 좋겠다"는 바램을 피력했다.
이어 "집안의 할아버지 유품도 신경 안 쓰고 이사 몇 번 다니다보면 금방 훼손되고 없어진다"며 "교회 문화유산도 쌓아 두거나 그저 지하창고에 보관해서는 원형을 보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가치 높은 유물은 사들여야
그는 신자이자 문화재 보존 전문가로서 가슴 아팠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숭실대 교정에 규모가 제법 큰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있습니다. 그 박물관이 한국교회 첫 신자 이승훈이 정약종에게 수여한 영세명장(領洗名狀, 1790년), 1795~1800년 천주교인 명부, 정약종 초상화 등 초기교회 유물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유물들은 천주교 박물관에 있어야 더 빛이 나기에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기증품으로 박물관을 채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사료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라고 판단되면 돈을 주고라도 사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유산이 왜 중요하고, 왜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 인식하면 해결책은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 건물을 지을 때 돈이 부족하면 독지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또 뜻있는 사람들이 기부한다"며 "교회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 그런 방식으로도 유물을 수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식 변화와 아울러 교회 당국의 적극적 의지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유학 중에 많은 돈을 지불하고 한국교회와 관련된 귀한 사진을 몇 장 구했습니다. 그 사진들이 한국교회 유물이 되려면 박물관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디에 내놓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선가 그런 사진들을 원하고, 잘 보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면 내놓을 수 있습니다. 교회 당국이 문화유산 수집과 보존에 적극성을 보이면 귀한 유물들이 곳곳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는 "자랑스런 순교 역사의 자료들은 건축물만큼 중요하다"며 "성당 건축 2~3곳 미루고 한국교회 위상에 걸맞는 박물관을 짓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