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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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고도 믿는 그들, 그래서 더 행복하다"

시각장애인 터키 성지순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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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가 마주보고 있는 이스탄불 중심가 술탄 아흐멧 지구.

 시각장애 청소년들에게 이 거대한 건축물들을 보여줄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성소피아 성당(내부 면적 7000㎡)만 하더라도 얼마나 웅장한지,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532년 낙성식 때 성당에 들어서서 "예루살렘 대성전을 지은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능가했소"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오스만 제국의 위용을 드러내는 블루 모스크도 크기가 이에 못지 않다.

 현지 안내인 손현민(프란치스카)씨의 설명이 재미있다.

 "블루 모스크는 뾰족한 연필을 세워놓은 것 같은 첨탑이 6개에요. 앞에 있는 지붕은 밥공기 엎어놓은 것 같고, 그 뒤 지붕은 바가지 엎어놓은 것 같고, 창문은 벌집처럼 나 있고…"

 역시, 궁(窮)하면 통(通)한다. 기념품점에 있는 건축물 모형을 사서 만져보게 했더니 청소년들이 "아~ 이제야 알겠다"며 만족스러워한다.

 충주성모학교 교사 이영신(로사) 수녀는 고대경기장 히포드롬에서 뱀 3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형상을 한 청동뱀 기둥을 설명하느라, 기둥 앞에서 학생들과 뱀처럼 엉켜 `쇼`를 한다.


 
▲ 고대도시 라우디케이아에서 유적들을 손으로 만져보는 시각장애 청소년들.
이들의 발달한 청각ㆍ촉각ㆍ후각ㆍ미각은 시각의 약점을 극복하고도 남는다.
 

 궁즉통(窮卽通)은 본디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에서 나왔다. 내가 변해야 상대방과 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때마침 황인환(서울 동서울지역교구장 대리 보좌) 신부는 미사에서 "서로 상대방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자"는 강론을 한다.

 "예수님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고 하셨다. 그분의 제자들은 보고야 믿었다. 특히 토마스는 그분 옆구리에 손을 넣어봐야 믿겠다고 했다. 도우미들은 시각장애 청소년들을 통해, 청소년들은 도우미들을 통해 예수님을 보는 순례를 하자."

# 서로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자
 
 이튿날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에게해 연안도시 이즈미르(옛이름 스미르나).

 에페소ㆍ페르가몬ㆍ필라델피아 등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7대 교회를 순례하려면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어 터키의 3번째 도시 이즈미르를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 도시는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카르푸스(69~155년)가 "예수님을 믿은 지 86년 동안 주님은 한 번도 나에게 잘못하신 일이 없는데, 어찌 주님을 모른다 하리오"라며 화염 속에서 순교한 곳이라 더 의미가 깊다.

 시차도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강행군. `만물박사` 유재준(요셉, 17)군은 헤비메탈ㆍ인터넷ㆍ스포츠 분야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수다로 장거리 버스 안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어느새 7대 교회의 하나인 페르가몬(묵시 2,12-17) 교회 터가 보인다. 로마시대에 세라피스 신전이었던 이 허물어진 교회 건물은 2000년 풍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폐허 위에 남아있는 대리석 기둥들과 금방이라도 `우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벽체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 황인환 신부가 들고 있는 갓 구워낸 터키 빵이 시장기를 재촉한다.
 

 그리스도는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전한 계시에서 페르가몬 신자들의 믿음을 칭찬하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희는 `사탄의 왕좌`에 살고 있다면서 우상숭배를 엄하게 꾸짖으신다. 그 꾸짖음을 귀담아 듣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사방 팔방 어디를 둘러봐도 2000여 년 전 신앙의 꽃을 피운 초대교회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 밝고 예민한 `마음의 눈`

 청소년들은 손으로 유적지 돌무더기를 더듬는다. 또 서로 손을 잡고 기둥을 빙 둘러서서 그 둘레를 가늠한다.

 이들의 눈은 `손 끝`에 있다. 지중해의 햇볕과 바람이 부딪히는 `뺨`에도 있다. 장애 때문에 슬픔과 고민이 더 깊었을 `마음`에도 있다. 이들의 `마음의 눈`은 비장애인이 깜짝 놀랄만큼 밝고 예민하다. 더우기 본 것을 갖고 상상력을 발휘해 쓰러진 기둥을 세우고, 떨어져 나간 벽을 쌓고, 무너져 내린 지붕을 올린다. 비장애인들은 대개 "돌덩이 밖에 없잖아"하며 볼거리 없는 유적지에 실망하는데 말이다.

 김솔(로사, 17)양은 라오디케이아에서 "여기저기 널려 있는 돌덩이들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묵시 4,16-17) 내 신앙심 같다"고 말한다. 솔이는 "마음을 잡고 지난해 가을부터 다시 주일미사에 참례하고 있다"고 한다.

 묵시록 저자는 "(너희가 풍족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묵시 4,17)고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라고 이르신다. 영적 가난을 책망하는 말씀이다.

 뙤약볕에서 유적을 더듬으며 그분의 목소리까지 마음에 담으려고 애쓰는 이들의 순례 태도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여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안약은 과연 누구에게 필요한 것일까?
이즈미르=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 `꿈★은 이루어 진다`-성지순례를 떠나기 전까지

우연과 고난의 연속 잘할 수 있을까, 잘돼야 될 텐데…

   지난해 11월 가톨릭 시각장애인 교육기관인 충주성모학교에 갔을 때다.

 교사 이영신(사랑의 씨튼수녀회) 수녀는 "아이들이 성경에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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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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