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6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특집] 마음의 눈으로 본 3000년 전 고대 도시

시각장애 청소년 터키 성지순례(3)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쿵!"

 우려했던 일이 기어이 벌어졌다.

 김종석(안드레아, 18)군이 페르가몬 교회(묵시 2,12-17) 인근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유적지에서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1.5m 아래로 추락했다. 돌계단 옆의 그늘진 허공이 땅인 줄 알고 내디뎠다가 맥없이 떨어진 것이다. 순식간이었다.

 종석이는 교정시력이 0.1인 약시다. 밝은 빛 아래서는 사물을 어느 정도 인식한다. 한낮에는 혼자서도 잘 다니고, 행동도 제법 의젓하기에 도우미들이 방심했다.

   천만다행으로 종석이는 툭툭 털고 일어났다. 도우미들을 쳐다보고 씨익 웃었다.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 "너도 영성체 할래?" 마을에서 올라온 견공(犬公)이 페르가몬 교회(묵시 2, 12-17) 터 야외미사를 방해하는 바람에 잠시 소동이 일었다.
 

# 깨어있지 않은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종석이는 "시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 순례에 참가했다"고 말한다. 지난해에는 한국 스카우트 연맹의 히말라야 등반에도 참가했다. 안압(眼壓)이 상승하는 바람에 눈물을 줄줄 흘리고, 울퉁불퉁한 돌부리에 수십 번도 더 넘어지면서 열이틀을 걸어 베이든 포엘봉(5825m)에 올랐다고 한다.

 그는 "높은 곳에 올라 큰 세상을 보면서 더 큰 꿈과 희망을 품으려고 떠났던 모험"이라고 자랑한다. 빛조차 인식할 수 없는 전맹(全盲) 장애를 준비하고 있는 듯 하다. 도우미들의 놀란 가슴을 태연한 웃음으로 달래주는 그의 웃음이 마음을 더 애잔하게 한다.

 순례단을 태운 버스는 어느새 사르디스에 닿는다.

 사르디스는 BC 700년 께, 소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리디아 왕국의 수도로 전성기를 누린 고대도시다. 페르시아ㆍ헬레니즘ㆍ로마ㆍ비잔틴ㆍ오스만 터키의 통치를 거쳤는데, 그 시절의 영화(榮華)를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볼거리는 아르테미스 신전 터에 남아 있는 높이 18m 기둥들뿐이다.


 
▲ 사르디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 남아 있는 기둥들.
 

 상상의 나래를 편다. 풍요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제사 지내는 광경을 그려본다. 원형극장에서 새어 나오는 시민들 함성에도 귀를 기울인다. 페르시아 제국 중심부까지 연결된다는 3000㎞ 길이 `황제의 도로`도 걸어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오히려 상상에 방해가 된다는 속설이 맞다. 시각장애 청소년들이 찬란한 고대도시를 더 풍요롭게, 더 실감나게 묘사한다. 그들 손은 기둥을 더듬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3000여 년 전 도시 한가운데 와 있다. 그들의 진지한 표정이 이를 입증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종 요한을 통해 이곳 사르디스 신자들(묵시 3,1-6)에게 이르셨다.

 "…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 깨어 있어라.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 가는 것들을 튼튼하게 만들어라. 나는 네가 한 일들이 나의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깨어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는 말씀이 참으로 절묘하다. 리디아 왕국은 페르시아 공격을 받고 BC 546년에 멸망한다. 당시 적의 파죽지세에 밀린 리디아 병사들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들어가 저항한다. 그러나 한 초병이 졸다 떨어뜨린 투구를 주우러 요새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바람에 비밀통로가 탄로난다. 다음날 최후 요새마저 속절없이 함락된다.

 결국 한 초병의 태만으로 리디아 왕국이 무너졌다. 그리스도는 등을 켜고 신랑을 맞으러 간 `열 처녀의 비유`(마태 25,1-13)에서도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의 기름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잠에 빠져 있다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기도하며 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라도 죄악의 유혹에 넘어가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게 현대인들 삶이지 않는가.



 
▲ "충주성모학교 교사 이영신(로사) 수녀가 권유진 양에게 파묵칼레의 경이로운 장관을 설명하고 있다.
 

# 유진아, 정말 미안해!" 

 40도를 오르내리는 한낮 땡볕을 피해 초저녁에 도착한 남서부 휴양지 파묵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8-07-2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8. 26

1사무 2장 8절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를 먼지에서 일으키시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