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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소설「레 미제라블」 안의 가톨릭 코드

비참·악 딛고 선 추구, 주님께로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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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영 교수
(엘리사벳,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1862년에 출간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은 21세기에도 뮤지컬과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로 끊임없이 재탄생하고 있다. 작품이 이처럼 사랑받는 이유는 인간의 비참함을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끊임없이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에 대한 믿음을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레 미제라블」은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비참한 사람들-도덕적으로 악한 사람, 가난한 사람, 불행한 사람-을 가혹할 만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비참함이 부정적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극복할 대상을 제시함으로써 구원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장 발장의 운명을 봐도 그러하다. 미리엘 주교가 그의 은식기를 훔쳤다 경찰에게 끌려온 장 발장에게 오히려 "은촛대도 선물했는데, 왜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되물은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그러나 장 발장이 개과천선하게 된 데는 한 가지 계기가 더 있다.

 `은촛대` 사건 직후 장 발장은 어린아이에게 5프랑짜리 동전을 훔친다. 이때 처음으로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받는다. 이 순간이 그를 구원으로 이끈다. 이처럼 선(善)은 악(惡)의 경험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불행과 고통, 가난과 죄악 등…. 모든 사회에 내재한 이러한 비참함은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다. 이런 점에서 비참함은 곧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비참함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위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는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분명 하느님을 믿었다. 그는 교회가 설파하는 의식과 교리에 대해서는 반발했으나, 무한한 사랑과 연민을 베푸는 신을 섬겼다. 그에게 하느님은 진리이자 정의, 자비와 법이며 사랑 그 자체였다. 「레 미제라블」의 하느님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지전능하고 무서운 야훼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초월하려는 의지와 행동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이상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장 발장은 흔히 예수 그리스도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리스도가 `인간이 된 신`이라면 장 발장은 수난을 감내하고 극복해 `신이 된 인간`이다. 장 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소극적 자비를 뛰어넘어, 한 도시 시장으로 불행한 자들을 돕고, 몇 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걸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적극적 행동으로서의 선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이 하느님을 추구하는 길은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여, 사회와 인류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간이 신에게 모든 것을 맡겼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 인간은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고 이 사회의 주인 노릇을 해야 한다. 작품 후반부 배경이 되는 1832년 6월 봉기에서는 이를 증명하듯 민중이 자유와 정의를 향한 열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의 비참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테나르디에처럼 추악한 사기꾼, 팡틴이나 에포닌처럼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여성, 자베르처럼 무정하고 부당한 법의 화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가난과 불행, 고통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딛고, 긍정적 가치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인간의 노력 속에서 역사적 발전이 있고, 하느님을 향한 상승의 움직임이 있다.

 의로운 삶을 살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시련을 겪고, 외롭게 죽어가면서도 모두를 끌어안고 용서하는 장 발장의 모습이 바로 빅토르 위고가 생각한 이상적 인간상이다. 우리가 장 발장에게서 찾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위로 인간을 위해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와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계속해서 산 위로 밀어 올렸던 시지푸스의 그림자가 겹쳐지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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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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