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겨울이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잠을 잃은 밤이었다.
나는 묵주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했다. 묵주에게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을까.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 안에 담겨있는 콘텐츠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 더 이상 사유할 시간도 언급할 필요도 없다.
묵주에게도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은 성모님을 상징하는 성모님의 마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성모님의 마음은 늘 자혜롭고 온화하고 사랑의 향기가 가득히 간직되어 있는 마음이다.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향기다. 그 향기는 약자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향기다. 죄 있는 자와 죄 없는 자를 다 함께 위로해 주고 고통을 보듬어 주는 향기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묵주를 지니게 된 것은 예비신자 교리공부를 할 무렵이었다. 세례도 받기 전인데 나에게 묵주가 선물로 전해져왔다. 아주 작은 알로 예쁘게 만들어진 은색묵주였다. 예술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기에 나는 이 묵주를 보석만큼 귀하게 생각했다.
"세례를 받게 되시기에 미리 축하를 드립니다. 하느님의 좋은 아들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세례명도 함께 보내드립니다. 성인 베드로란 이름을 택했으면 싶습니다. 형제님은 성격이 베드로를 많이 닮았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나에게 보내준 소박한 성의였다. 나는 그분에게 이렇게 빚을 졌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분의 권유대로 베드로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 무릎을 깊이깊이 꿇었다. 이렇게 무릎을 꿇음으로써 그분이 베풀어 준 성의에 대해 나름대로의 겸허하고도 작은 예의를 갖추는 것이 된다고 생각해서였던 것이다.
그렇다. 20여 년이라면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세월동안 예쁘고 예술미가 있고 보석처럼 귀하게만 느껴지는 은색 묵주와 떨어져 있는 일이 없었다. 묵주가 있는 곳에 내가 있었고 내가 있는 곳에 묵주가 있었다.
묵주는 나에게 있어 분신(分身)이며 신앙을 지켜주는 정신이었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는 곁에 누가 있든 없든 나는 소중히 간직되어 있는 묵주를 주머니에서 꺼내 손에 쥐고는 십자성호를 긋는다. 불편한 마음이 해소되었다.
묵주 기도의 가치는 숭고하다. 그러기에 묵주와 묵주 기도는 한 몸이 될 수 있다. 그 속에 묵주의 마음도 있다.
나는 요즘 나이 때문인지 자꾸 잊고 무엇인가를 잃어버린다. 크고 작은 것에 대한 가치가 문제가 아니다.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 오랫동안 나와 시간을 함께한 것들을 잃어버릴까봐 걱정이 된다.
그래서 소중히 지니고 다녔던 나의 은색 묵주를 서재 한 곳에 안치(安置)해 두고 있다. 좀 미흡하고 기우에 치우쳐 굴복하는 모양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잃어버린다는 것에 비하면 그래도 낫다. 안전한 방법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나의 예쁜 은색 묵주를 잃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서운해 할 것이다. 아니다. 슬퍼할 것이다. 그렇다. 슬퍼할 것은 분명하다. 까닭은 묵주의 마음이 나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