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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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묵주이야기] 36. 어두운 길 밝혀준 ''손전등 불빛''

박일원 십자가의 성 요한 (호주 시드니 와이타라본당,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합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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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톨릭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참 암담하고 심란한 시절이었다.

 두 살 때 걸린 소아마비로 어머니 등에 업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에는 친구와 친척 등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중ㆍ고등학교를 거친 후 대학까지 마쳤지만 이제는 뭘 해야 하나, 그리고 내 짝은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나에 대한 온갖 궁리 때문에 잠 못 이루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명동성당에 이르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제발 예쁜 짝 하나를 보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나는 결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원이 이뤄져 더 기도할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그 후 낯선 호주에 이민 와 살게 되면서 의지할 곳이 필요해 성당을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피정을 겸해 시드니 남서쪽 잼버루에 있는 성 베네딕도 수도원까지 찾아갔다. 깊고 깊은 산골이라 사람도, 나무도, 공기도, 물도, 구름도, 생각도 모든 게 다 고여 있는 듯했다. 수도원 입구에는 피정이나 묵상하러 오는 외부인을 위한 오두막이 몇 채 있고,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수녀님들이 거처하는 숙소와, 새벽이면 인근 마을 주민이 찾아와 미사를 봉헌하는 작은 성당 하나가 있다.

 통나무로 지은 오두막 별채에서 이틀 동안 머물며 성경을 읽고 묵상한 뒤 시드니로 돌아오는 날 아침이었다. 수녀원에 딸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수녀님 한 분이 다가오시더니 혹시 시드니까지 가는 거라면 `렌드윅`이라는 동네에 사는 여성 신자 한 분을 데려다 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아내는 쾌히 승낙했지만 나는 그곳을 들르면 돌아가야 했기에,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들어 짜증이 났다. 게다가 그 여성은 우리와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몸이 피곤해 뒷자리에 눕겠다고 말하는 등 다소 예의가 없어 보였다.

 렌드윅에 거의 다 와서 사는 집이 어디냐고 묻자, 그 여성은 그냥 로터리 근처에 세워주면 된다고 대답했다. 아내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사는 곳의 정확한 위치를 묻자 그녀는 프린스 오브 웨일즈 병원이라고 했다. 그제야 아내와 나는 그 여성이 병원 장기입원 환자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가 뒷좌석에 자꾸 누우려고 했던 이유도 알게 됐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던 거였다. 그녀는 병원 입구에서 내리며 손가방에서 묵주 하나를 꺼내 작은 선물이라며 건네줬다.

 순간 나 자신이 무척 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전날 수녀원에서 새벽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오두막 숙소를 나섰을 때 일이 떠올랐다. 캄캄한 새벽,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아내와 나는 우산에만 신경을 썼지 어두운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는 전혀 생각지 못해 손전등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성당까지 요리조리 물웅덩이를 피해 가며 오솔길을 가고 있는데, 뒤에서 차박차박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일정 거리를 두고 누군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앞쪽으로 계속 손전등 불빛을 비춰줬다. 워낙 캄캄해서 뒤를 돌아봐도 그가 누군지 볼 수 없었지만, 그 오렌지 불빛은 우리가 돌부리나 물웅덩이를 피해 갈 수 있도록 살펴줬다.

 나는 그 여성분이 전해준 묵주를 볼 때마다 그동안 내가 이 묵주를 손에 쥐고 남을 위해 기도했던 적이 얼마나 되는가 생각해본다. 부끄럽게도 인도의 잠언시 한 구절이 떠오르는 비 내리는 저녁이다.

 "나 아닌 것들을 위해/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은/아무리 험한 날이 닥쳐오더라도/스스로 험해지지 않는다//갈라지면서도/도끼날을 향기롭게 하는/전단향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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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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