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미국)=CNS】 한국전쟁 당시 부상병과 포로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다 북한 벽동포로수용소에서 선종한 에밀 카폰(Emil Ka paun, 1916∼1951) 미 군종신부에게 미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이 추서됐다.

▲ 에밀 카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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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폰 신부 조카 레이 카폰씨가 11일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서한 명예훈장을 대신 받았다. 【CNS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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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1일 백악관에서 카폰 신부를 대신해 조카 레이 카폰씨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고 "카폰 신부는 군화를 신은 목자이자, 총보다 더 강한 무기인 `사랑`으로 전우의 목숨을 살린 위대한 군인"이라고 칭송했다.
1940년 사제품을 받고 군종신부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카폰 신부는 이후 일본에서 근무하던 중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미군과 함께 한국에 도착했다.
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사목한 그는 1950년 9월 총탄을 뚫고 부상당한 병사를 구한 공로로 동성훈장을 받았다. 그는 미군이 중공군에 밀려 퇴각할 때, 걷지 못하는 부상병들을 두고 갈 수 없어 적지에 남았다. 부대를 따라 남하(南下)할 수 있었지만 부상당한 전우들을 돌보기 위해 일부러 포로가 된 것이다.
평북 벽동수용소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는 포로들이 이질로 고생하자 목숨을 걸고 배급소에 몰래 들어가 필요한 음식과 물품을 구해다주곤 했다. 배급된 식량도 영양실조에 걸린 포로들에게 나누어 주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들을 부축해 화장실에 다녀오는 등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특히 절망에 빠져 있던 포로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줬다. 포로들은 그가 퍼뜨린 `희망 바이러스`에 힘입어 서로 도와가며 살아남는 방법을 배웠다.
전장에서 카폰 신부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허브 밀러씨는 이날 훈장 수여식에서 "수류탄 폭발로 부상을 당하고 포로가 되자 카폰 신부가 나를 부축해 수용소까지 걸었다"며 "중공군이 부상병들을 총살시키려고 하자 그것을 저지하고 부상병들이 계속 걸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애원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카폰 신부는 다리를 다친 부상병들이 한발로 깡충깡충 뛰도록 격려하고, 쓰러진 부상병들은 달려가서 일으켜 세워줬다"고 말했다.
카폰 신부는 1951년 5월 23일 35세로 수용소에서 병사할 때까지 포로들에게 영혼의 위로자요 목자로서 헌신해 `전장의 그리스도`로 존경받았다.
카폰 신부의 영웅적 생애는 1954년 「종군신부 카폰 이야기」라는 책이 발간되면서 미국 사회에 알려졌다. 이 책은 2년 후 당시 신학생 정진석 추기경 번역으로 한국에도 소개됐다. 미 군종대교구와 캔자스주 위치토교구 등이 그의 시복시성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