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새벽의 상큼한 공기를 가르는 새소리처럼 잔잔하게 밀려오는 평화다. 그것은 어느 먼 곳으로부터 전해오는 사랑의 음률로 머무르면서 성찰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일상의 잡념이 사라지고 오로지 무아지경 같은 상태가 되어 나를 비우고, 비어 있는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채우는 따뜻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맛보는 시간 속에서 늘 부족함을 느낀다. 그래서 삶의 절실함으로 다가오고 그 누군가에게 매달리게 된다.
처음 세례를 받았을 때 수녀님과 주변 분들이 묵주를 선물로 주셨다. 항상 기도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서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기도생활도 하게 됐다. 언제나 꾸준히 묵주기도를 바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옆에 있는 나도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곤 했다. 출근하면서 주모경을 바치고 퇴근할 때에도 감사의 마음으로 주모경을 바친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십자성호를 긋고 묵주기도를 바치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분께서는 간절하게 기도하면 꼭 들어주시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변두리 실업학교에 근무하면서 내면의 갈등이 많았다. 그래서 몇 군데 다른 학교에 원서를 내고 기다리며 간절하게 기도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그분께서 응답해 주셨다. 친척과 친구 하나 없는 낯선 남도의 소도시 학교에 발령을 주신 것이다. 오로지 기댈 곳은 그분밖에 없었다. 낯선 곳에 대한 적응은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직장과 성당, 집이 당시 생활의 전부였다. 전에 근무하던 곳에서 느끼지 못하던 교직의 행복감을 맛보고 있었다.
조금씩 직장에서 여유가 생기면서 학창시절부터 간직해온 문학에 대한 동경과 공부에 대한 꿈으로 갈등하던 시기가 있었다. 신앙생활이 게을러지고 있을 때였는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오만의 싹이 돋아나오는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저녁마다 아이들 손을 잡고 기도하자고 하던 시기였다. 기도를 마치면 회오리바람처럼 고통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곤 하였다. 기억의 저편에서 다가오는 고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흘렀다. 하느님이 겸손해지라고 채찍질하는 것이었다.
묵주알 한 알 한 알 넘길 때마다 성모님을 느끼고 신비를 체험하기까지 참으로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아내를 따라 성체조배를 하면서 묵주기도를 꾸준히 하고 묵상을 하면서 그 신비를 느끼게 된 것이다.
큰 욕심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소박하게 글을 써 보자는 취지로 가톨릭여성회관에서 개최하는 문예대학에 수강을 했는데 등단도 하게 됐고 시집도 내게 됐다. 또한 봉사할 기회가 주어져 가톨릭문인회 사무국장으로 역할을 수행하면서 하느님의 아름다운 말들을 세상에 전하는 시를 써 보자고 다짐하였다.
마산교구의 천주교 역사를 서사형 장시로 써 보면 어떨까 하고 시작을 하였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40편의 연작시를 구상하고 1년이 지나도 한 편을 완성하지 못하였다. 제목도 잡지 못하였다. 어느 날 문득 이 일은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간절하게 기도했던 예전처럼 묵주기도를 하는데 고민하던 시의 제목이 떠올랐다. 마산교구의 모태성당인 `마산 성요셉성당`. 성요셉성당이 흘러온 역사를 형상화하기 위해 교구사의 흐름과 지역사회의 시대상황을 공부하면서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완성을 보았다. 묵주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전구로 마산교구의 역사를 시로 노래해 보겠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게 되었다.
돌아보면 모두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었다. 다른 신자보다 한참 부족한 신앙이지만 응답해 주시는 당신께 감사하며 오늘도 영광의 신비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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