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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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이웃사촌? 이젠 연예인 사촌

김지영 이냐시오(EBS 이사,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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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쯤, 신문사 임원으로 일할 때의 일이다. 신입 공채기자 필기시험을 마치고 1차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면접시험을 실시했다. 응시자들은 4명씩 조를 이뤄 면접장에 들어왔는데 어느 조에겐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재종숙이 뭔가?" 겨우 한 응시생만 손을 들더니 답을 맞혔다. "7촌 아저씨 아닙니까?" 당시 나는 젊은 응시생들에게 갑자기 낯선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혼자 속으로 약간 당황했다. "재종숙(再從叔) 정도를 모르다니…, 한국사람, 그것도 신문기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이게 세대차이인가?"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사람들은 더 많이 변한다. 그러니 지금은 어떨까? 신문사에 응시하는 젊은이들 중 재종숙을 아는 이들이 더 늘었을 리는 없고 아마도 8명중 1명, 또는 10명중 1명만 알지도 모른다. 최근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로 미뤄보면 아마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지난달, 한 친척집에 결혼예식이 있었다. 결혼식장에는 으레 그렇듯 이런저런 호칭의 친척들이 운집했다. 그런데 나의 친조카와 종조카(종질ㆍ5촌)가 "저, 누구입니다" 하고 서로 초면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주고 받는 게 아닌가. "아니, 6촌 형제들이…? 아버지끼리 4촌 형제이고, 증조부가 같은 한 분인데…어쩌다 이 지경까지…."

 10년 전 면접장에서 당황했다면 이번에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늘 과거의 연장선에서 그 관성을 타려는 나 자신과 `진리(도그마) 외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시간의 속성을 새삼 되새김질했고, 친조카와 종조카 세대를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령 이렇게 말한다 치자. "우리의 친척 계보와 촌수 도표에는 그 많은 친척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칭하는 호칭이 다 따로 있고, 그 많은 호칭도 원리만 알면 간단하다. 부모와 아저씨뻘, 조카뻘 세대는 1촌ㆍ3촌ㆍ5촌ㆍ7촌ㆍ9촌 등 홀수이고 한 촌 건너 갈 때마다 숙ㆍ질(질녀), 종숙ㆍ종질, 재종숙ㆍ재종질, 삼종숙ㆍ삼종질로 호칭한다. 가령 남편 친척들이라면 거기에 `시`자만 붙여 `시부모ㆍ시숙부ㆍ시종숙부…`라고 하면 된다. 아버지의 외가친척이면 촌수 앞에 `진외`(陳外), 어머니의 외가면 외외(外外) 자를 호칭 앞에 붙인다…." "이 얼마나 과학적이면서도 간단한가, 조금만 신경쓰면 금방 알 수 있다…."

 말인즉슨 옳다. 하지만 무릇 어떤 대상이라도 시각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접해야 이미지가 머릿속에 착근하는 법. 친척들이 한 동네에 모여 살거나 늘상 왕래하며 살던 옛날에는 어린이들조차 그 복잡한 친척들의 호칭과 계보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호칭 기호와 그에 해당하는 존재를 늘 일치시켜 보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사람들 대부분은 일상생활에서 친척들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 삶의 양식ㆍ방식이 옛날과 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삶의 양식ㆍ방식이 다르기로는 젊을수록 더하다. 그들은 철저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치열하게 무한경쟁적 삶을 살고 있다. 이젠 남녀 할 것 없이 자기 힘으로 성과를 내야 산다. 성과주의 체제에서는 결혼도 늦어져 나이 많은 처녀ㆍ총각이 넘쳐난다. 사람 간의 강한 유대감은 희박해지고 자연히 혈연같은 원초적 유대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외국에 나가 사는 이들도 많은데, 내 조카의 경우도 그랬던 것이다. 하기야 그 옛날에도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지 않았던가. 사촌이라도 자주 봐야 가깝지,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자주 보는 이웃이 사촌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친척은 물론이고 이웃과도 유대관계를 맺기 어렵다.

 그들은 혈연같은 천륜이나 이웃 대신에 SNS를 통해 수시로 유사친척ㆍ유사이웃 관계를 맺고, 또 수시로 끊는다. 그리고 모니터를 통해 늘 연예인들을 접한다. 삼촌과 사촌ㆍ오촌ㆍ육촌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에는 환하다. 누가 누구와 새로 사귀고 요즘 무슨 말을 하고 다니며 어떤 옷을 잘 입고 다니는지 등등….

 `이웃사촌`도 옛말, 이젠 `연예인 사촌`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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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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