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신관계는 부자관계처럼 친밀한 것도 아니고 타산관계로 생겨난 것이다.
군주가 도를 해하면 신하는 힘을 다하여 간악이 발생하지 않으나 군주가 도를 제대로 행하지 않으면 신하는 군주의 눈을 속이고 사리사욕을 충족한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되 예로써 하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써 할 것이다.`
앞의 글은 「한비자」 `논란 1편`에 나오는 내용이고, 뒷글은 공자의 글과 문답을 묶어 놓은 「논어」 제3편 `팔일`에 나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논어」와 「한비자」에서 `군신관계`를 거론했지만 강조한 내용은 확연하게 다르다. 공자는 `예`와 `충`의 관계라고 봤지만 한비자는 서로 이해를 주고받는 `계산관계`로 생각했다.
「한비자」와 「논어」에 있는 `군신관계`를 현재의 직제로 바꿔보면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 된다. `대통령과 공무원은 부자관계처럼 친밀한 것도 아니고 타산관계로 생겨난 것이다` 혹은 `사장과 직원은 부자관계처럼 친밀한 것도 아니고 타산관계로 생겨난 것이다`가 된다. 또 `대통령은 공무원을 부리되 예로써 하고, 공무원은 대통령을 섬기되 충성으로써 할 것이다`로 바꾸거나 `사장은 직원을 부리되 예로써 하고 직원은 사장에게 충성으로써 할 것이다`로 바꿀 수 있다.
최근 청와대는 공석 중인 감사원장과 보건복지부 장관, 공공기관장 후속 인선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감사원장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또 한국자산관리공사, 기술보증기금, 한국예탁결제원, 코스콤,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관광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마사회 등의 수장은 누구인지 해당 업계에서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시대가 변해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 교훈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적임자가 갔을 때와 그렇지 않을 사람이 갔을 때 결과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크다. 그래서 누구를 어떤 자리에 배치할 것인가는 나라를 운영하는 대통령부터 작은 회사의 사장까지 늘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집권 초 미국 순방 수행 중 성추행을 저지르고 `도피 귀국` 한 뒤 물러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에다 최근 채동욱 전 검찰총장,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와 같은 사실상의 인사 참사를 겪은 대통령 입장에서는 고민이 클 것이다. 특히 대선 때부터 핵심 측근으로 믿고 썼던 진영 전 장관의 경우를 생각하면 어떤 사람을 쓸지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수천 년 전 공자와 한비자가 강조했던 `군신관계`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비자처럼 군신관계를 타산관계 즉, 계산을 하는 관계로 보면 진영 전 장관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된다. 반면 `임금이 신하를 부리되 예로써 하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써 할 것`이라는 논어의 글을 빌리면 진영 전 장관은 불충을 한 셈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시대 상황에 따라 어떤 사람은 공자를, 또 다른 사람은 한비자가 말한 군신관계를 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한비자」 `논란 1편` 뒤에 나오는 글이다. 즉, `군주가 도를 제대로 행하지 않으면 신하는 군주의 눈을 속이고 사리사욕을 충족한다`는 대목이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에서도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고, 실패를 잘 인정하지 않는 스타일을 고수했다. 진영 전 장관이나 윤창중 전 대변인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이번에도 평소 자신과 소신이 다르면서도 자리를 얻으려는 사람, 임명권자의 눈치만 보려는 사람, 또 노조나 특정 단체와 결탁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사를 선택한다면 군주의 `도`를 제대로 행하지 않은 것과 같다.
인사는 만사다. 하지만 또 인사는 망사(亡事)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