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군수 미카엘(평화방송 라디오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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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시절, 음반회사에 갓 입사한 직원의 경험담이다. 점심시간에 사무실로 자장면이 배달됐다. 곧바로 "깔아, 깔아" 하는 선배 목소리가 들렸다. `뭘 깔라는 거지?`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선배는 음반 몇 장을 테이블 위에 깔았다. `아니, 저 명반을 자장면 받침으로 깔다니….` 그러나 해 본 사람은 안다. LP 음반이 중국음식 받침으로 얼마나 쓸모 있는지.
라디오 프로그램도 유행을 탄다. 한때 전화 신앙상담이 인기를 끌었다. 요리문답 수준에서부터 깊이 있는 성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전화를 받고 방송으로 연결하는 피디는 목이 탔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데, 이 질문에 답변을 못하면 어쩌나?
어느날 연세 지긋하신 자매님이 전화를 하셨다. 머뭇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피디의 채근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나지막한 목소리. "저, 평화신문을 어떻게 할까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자매님은 평화신문 독자였다. 매주 배달되는 신문을 읽고 또 읽으며 차곡차곡 모아왔는데 오래도록 쌓이다 보니 집안에 둘 곳이 마땅찮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말씀이 적혀 있고, 교황님 사진이며 존경하는 추기경님의 얼굴 사진이 실려 있는 신문을 분리 수거할 수 없어서 고민 끝에 신앙상담 프로그램에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평화신문을 마치 성물처럼 귀하게 여기는 자매님의 `고민`을 들으며 목이 메었다. 우리가 이렇게 소중한 일을 하는구나 하는 자각과 함께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반성도 됐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잠시. 곧바로 자매님의 `고민`을 방송에 연결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피디의 고민이 밀려왔다. 신부님이 이 `고민`에 어떻게 답변을 할지, 더구나 생방송인데…. 신부님의 답변은 명쾌했다. "네, 자매님! 걱정하지 마시구요, 본당 사무실에 가져다주세요."
평화방송 라디오가 가을을 맞아 프로그램 단장을 새롭게 했다. 아침 5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하루 21시간 생방송을 통해 청취자를 만난다. 마음이 설렌다. 개편 프로그램을 방송한 지 2주밖에 안 됐는데 몇몇 프로그램은 벌써 청취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우리의 소소한 일상과 세상의 아픔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기도로 위안 받는 시간인 `기도의 오솔길`에 잔잔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에 시작한 개편 준비는 평화방송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일로 출발했다. 10년 전인 2003년 청취율 자료와 2013년 조사결과를 검토했다. 두 자료를 비교해 보니 그 10년 간 라디오 청취층에 변화가 있었고 선호 프로그램도 달라져 있었다. 재미와 편안한 음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인터넷이나 앱을 통해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의 비율이 20를 넘었다.
8월에는 라디오 가족들이 워크숍을 갖고 열띤 논의와 토론을 통해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더 나은 방송을 위해 지혜를 모았다. 창립 25주년을 맞은 평화방송이 교회의 신뢰 속에 신자와 청취자의 사랑을 받는 방송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소명도 새겼다.
복음의 발원지! 평화방송의 본분을 다하면서 청취율도 올리려는 이번 개편에 많은 분들이 격려를 보내주셨다.
"평화방송 살아 있네!"
오래 전 신앙상담 프로그램에 전화를 주셨던 자매님의 지극한 마음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