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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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지금, 여기''는 지옥(?)

김혜경 세레나(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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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테의 「신곡」은 이탈리아 문학사의 새로운 장(場)을 연 작품이지만,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을 대중화하는 데도 가장 크게 기여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삼계 안에서 드러나는 신(神) 존재의 증명과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이심, 은총과 자유의 주체로서 그분에 대한 묘사와 함께 죄와 양심과 도덕적 의식에 직면한 인간에 대한 묘사는 「신곡」의 신학적 측면들을 입증한다.

 많은 사람이 「신곡」을 읽기 시작하지만, 대부분 `지옥`에 머무르고 만다. 이는 단테가 표현한 지옥은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연옥과 천국은 신앙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어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단테는 `지옥`에서 인간의 `관계`에 대해 특별히 두 가지 사례를 들어 언급하고 있다. 파울로와 프란체스카의 사례(육적인 죄)와 우골리노와 루지에리의 사례(영적인 죄)가 그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무서우리만치 잔인하다. 루지에리는 배반죄로, 우골리노는 극도의 증오심으로 지옥에서도 가장 무섭다는 심연에 있는 제9옥에 있다. 예수님을 팔아먹은 유다도 이곳에 있다. 이곳은 사랑으로 불타는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죽음과 냉기만 감돌고, 영혼들은 얼음 호수에 갇혀 `영원히` 꼼짝달싹할 수가 없다. 바로 이곳에서 단테는 자기가 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한 구멍에 두 놈이 함께 얼어붙어 있는 광경이 눈에 띄었나니, 한 놈의 머리가 다른 한 놈의 머리에 모자처럼 얹혀 허기진 놈이 빵을 게걸스럽게 먹는 것처럼 위에 있는 놈이 밑에 있는 놈의 골통과 목덜미 사이를 마구 물어뜯더라"(`지옥` 제32곡).

 여기에서 위에 있는 놈은 피사의 백작이었던 우골리노이고, 밑에 있는 놈은 피사의 대주교였던 루지에리다. 당시 이탈리아 전역에서 황제당과 교황파가 다툼을 벌이는 와중에 루지에리는 처음에 교황파 우골리노와 손을 잡았다가 우골리노가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그를 배반하고, 황제당 인물이 되어 우골리노와 그의 자손들을 탑 속에 가두어 굶겨 죽였다. 우골리노는 자손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배반의 증오로 몸을 떨었고, 그 자신 배고픔에 눈이 멀고, 마침내 죽은 자식들을 먹기 시작한다. 단테는 이후의 일을 "고뇌에 지지 않던 나도 배고픔에 지고 말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제 우골리노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루지에리를 향한 증오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지옥의 심연에서 `영원히` 그를 증오하며 물어뜯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데리고 이곳까지 왔을까? 우골리노와 똑같은 엄청난 배반의 아픔과 증오심을 품고 있던 단테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증오가 얼마나 힘든 자기 착취이고, 무익한 보복인가를 인식시켜 그런 감정에서 해방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야만 지옥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자 했던 것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는 21세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념 논쟁에 빠져 민족적인 증오심을 고양시키고 사회 갈등을 부추기도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다른 의견`과 `이념 논리`를 동일시하며 서로 물고 뜯는 싸움을 계속할 것인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혹여 우리도 우골리노와 루지에리처럼 소모적인 논쟁으로 자신을 착취하고 무익한 보복의 감정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사이에 일본은 우리의 영토인 마라도ㆍ홍도ㆍ이어도까지 일본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켜 놓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였고, 이런 사실을 우리 국방부는 전혀 알지 못했으며, 여기에 대해 중국이 나서서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면서 동아시아권 세력 갈등이 하늘과 바다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우리끼리 물고 뜯으며 "마치 개 이빨처럼 날카롭게 뼈를 갉기"(`지옥` 제33곡)보다는 외교에 집중하여 우리의 영토 수호에 힘을 쏟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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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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