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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믿으며

남정률 요한 사도(기획취재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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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백 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 어제의 안녕이 내일도 이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앞날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별반 차이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언제든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새해 벽두에 `새해, 그리스도인의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이 칼럼에 쓴 글의 일부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국민을 공황 상태로 몰아넣은 처참한 일이 이 땅에서 발생했다. 들뜬 가슴을 안고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을 포함한 300여 명의 세월호 승객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실종자가 살아 있으리라 기대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생때같은 자식을 떠나 보낸 부모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피지도 못한 채 져버린 어린 청춘들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세월호의 비극은 할 말을 잊게 만든다. 비단 세월호뿐만이 아니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은 가까이서 멀리서 늘 있어왔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셀 수 없이 많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세월호가 가장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사는 바로 여기서 지금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서 600만 명이나 되는 유다인이 학살됐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 유다인 학살은 600만 명이라는 죽음의 숫자로 기억될 따름이다. 600만 명 각자가 지닌 영혼의 무게는 우주보다 더 무거운 데도 말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셨다는, 선(善) 자체라는 하느님은 왜 이런 악(惡)을 허용했는지 무슨 변명이라도 하셔야 할 것 같다. 악은 선의 결핍이라든가, 세상의 모든 악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저지른 것이기에 하느님은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하느님의 선하심을 옹호하는 신학적 이론은 그럴듯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와 닿지가 않는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울부짖는 유가족의 슬픔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예나 지금이나 하느님은 세상만사를 방관하고 침묵하는 하느님으로 보일 뿐이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신앙이지만 기자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감히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느님은 사랑`(1요한 4,8)임을 믿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증거할 수준의 신앙은 못 되지만 하느님을 깊이 체험한 신앙인들의 증언을 통해, 그리고 성령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은총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그렇게 알고 믿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믿는다면, 세월호 희생자들을 하느님께 맡기도록 하자. 이 세상 넘어 보이지 않는 저 세상까지 관장하는 초월적 하느님은 분명 세월호 희생자들을 사랑으로 품어주실 것이다. 그들을 어떻게 품어 안으실지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다만 하느님은 그들의 슬픔과 눈물을 거둘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상을 넘는 방식으로 그들과 함께하시며 보살피고 계실 것을 확신한다.

 `새해, 그리스도인의 희망` 칼럼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썼다. "무참하게 기대를 저버리는 쓰라린 경험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는 것은 예기치 못한 어떤 나쁜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것은 하느님께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신앙의 징검다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유가족에게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이 모든 것은 하느님 사랑의 섭리라는 것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다. 하느님 사랑이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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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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