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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이기심의 바벨탑을 부수자

박승찬 엘리야(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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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에 대한 일부 목회자들의 망언이 언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탑승자 가족들의 오열을 미개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여행 자체를 가난한 이들의 사치로 치부함으로써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그 와중에 한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그래도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망언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철학적으로 살펴보자면 이러한 주장 뒤에는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천박한 ‘변신론’(辯神論)이 숨어 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이란 죄에 대한 벌 혹은 의인(義人)의 교육이나 시험을 위해 신이 행한다는 것이다. 변신론의 대표자 라이프니츠(1646∼1716)는 악을 거쳐 선이 증가하며 악 자체는 전체의 조화 속에서 선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신론에 대해 현대의 한 실존철학자는 ‘나는 어린이들이 만신창이가 되어 학살당하고 있는 것을 허락하는 창조주를 죽는 순간까지 거부하겠소’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변신론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는 유다인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1906∼1995)다. 그는 20세기의 아우슈비츠 사건 이후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변신론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상처받을 가능성을 지닌 얼굴’ 속에서 현현하는 고통의 눈물이 나로 하여금 나의 삶 속에서 책임을 다하도록 다그치는 명령의 소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강력하게 무장한 근대 철학의 변신론조차 이렇게 논박된다면, 앞서 언급한 설익은 변신론의 설명이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더욱이 변신론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오직 지양(止揚)될 수 없는 고통, 즉 자연악과 같은 경우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탐욕과 무능으로 점철된 세월호 참사는 변신론이 적용될 수 있는 경우조차 아니다. 따뜻한 위로는 못 해줄망정 고통받는 이들에게 엄청난 모멸감을 주는 목회자들은 타인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저버린 채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거짓 예언자에 불과하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오열은 우리가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덜어주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윤리적 명령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레비나스는 나의 고통이나 타인의 고통 그 자체가 따로 떨어져 있으면 아무런 쓸모없으며, 타인의 고통을 위한 나의 고통, 즉 대속적인 고통만이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세월호 참사를 돌아보자면, 학생을 구하려다 함께 죽음을 맞은 교사들, 많은 자원봉사자와 민간잠수사들이 보여 준 희생과 고통은 진정으로 그 윤리적 명령을 실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에 대해 외부에서 정치적 또는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며 이를 고통받고 있는 그들에게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비인간적 폭력이 될 수 있다. 오직 그 가족들만이 자신에게 벌어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주체다. 그 가족들과 함께 우리는 속죄양을 찾아내 국민의 분노를 그곳으로 돌리려는 시도나, 새로운 여흥으로 유혹하는 미봉책에 속지 말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쇄신을 완수해야 한다. 세월호 가족들의 눈물이야말로 우리에게 ‘이제까지 한국사회가 쌓아온 이기심의 바벨탑’을 부수라는 강력한 윤리적 명령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 사회 전체는 그 양심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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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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