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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사도 바오로의 길

정미연 아기 예수의 데레사(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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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 가운데 사도 바오로의 길만큼 감동적인 길이 어디 또 있으랴? 그분의 길에는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깊은 우물이 있었다. 워낙 광대한 광맥이었기에 가까이 다가갔다 할지라도 그 감동을 어떻게 감히 필설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정교회의 소티리우스 대주교님을 모시고 사도의 길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소중한 이야기를 미약하나마 하려 한다.

사도의 탄생지인 타르수스 원시의 산들은 그분의 높은 정신과 열정, 예언들을 이미 품고 있었고 큰 분의 씨앗은 거대한 자연의 기운과 함께했다. 랍비들의 교육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열다섯에 예루살렘에서 구약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한다. 이후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형과 부활에 관해 논쟁이 벌어진다. 예수님을 변론하는 스테파노에게 폭도들은 돌팔매를 던진다. 그러나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순간에도 그의 얼굴은 천사처럼 빛난다.

사울은 첫 순교자를 죽인 자들의 옷을 맡아 준 그 일로 평생 양심의 가책으로 시달린다. 끔찍한 박해자가 되어 교회 신자를 축출하는 일에 앞장선 사울에게 놀라운 사건이 다마스쿠스에서 일어난다. “불타는 광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진정 슬픔에 찬 아름답고 고요한 두 눈을 가진 하늘에 속한 그분의 얼굴을 보았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1코린15,48) 대주교님 글을 따라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가장 나의 혼을 흔들었던 장면이다.

거역할 수 없는 눈빛의 예수님을 만난 사울의 원고를 껴안고 그 무덥던 여름을 뒹굴었다. 망각의 천재인 나는 은총의 시간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또 반복해 지어온 숱한 죄들이 떠오른다. 죄 덩어리인 우리를 그분의 자비로 한순간에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빛에 대해 생각했다. 사도의 굳건한 믿음에 초석이 되었던 그 그리스도의 빛 속에 나 또한 머물고 싶다. 깊은 영적 표현을 해야 하는 그림이기에 끙끙대며 씨름을 한다. 장님이 된 사울. 하나니아스가 머리에 손을 얹자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고 다시 빛을 보는 기적의 순간을 맞는다. 우리 곁에 언제나 계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는 장님인 우리는 사도의 길을 따라가면서 얼마나 더 비늘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을 맞아야 할까?

사도는 위대한 교부들을 만들어낸 사막에서 3년 동안 사색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믿음을 더욱 완벽하게 했다. 그 후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에게 밀려오는 핍박과 세계를 향한 선교의 대역사가 시작된다. 안티오키아 지방을 지나며 편안히 차로 달리기에도 힘든 길을 이 장대한 산맥을 걸어서 전교했다니, 인간의 의지로 행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대주교님은 고향 아르타와 가까운 니코폴리스에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세운 거대한 성전 바닥의 모자이크를 설명하셨다. 사도가 마시던 샘물을 수로를 통해 어린 시절 대주교님이 마셨다는 감격 어린 말씀을 들으며, 시공을 초월한 사도의 숨결을 감지한다. 사도 바오로는 돌팔매질 당하는 순간 스테파노의 죽음을 떠올리며 평생 숨겨온 아픔을 보속하는 마음으로 박해를 감수한다. 필리피의 거대한 폐허 속 유적지에서 사도를 따르는 세계 속 신자들을 만난다. 어두운 밤 강력한 지진으로 감옥 문이 열리고 억울하게 갇힌 사도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사도가 갇혔던 초라한 감옥을 스케치할 때 만난 두 프랑스 노인의 인자한 눈동자와 하느님을 선포한 아테네의 최고 법정 아레오파고스와 코린토, 에페소, 폐허 속에 빛나던 페르가몬…. 이 놀라운 성지들을 어떻게 잊겠는가!

지금도 미사 중에 이 단어들이 등장할 때마다 어느덧 그곳에 머무는 영혼의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손이 묶인 채 동쪽으로 돌아서 하느님께 마지막 기도를 드리던 사도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고 주님을 찬양하던 그의 입은 영원한 침묵에 잠긴다. 장렬하게 순교하는 가슴 떨리는 마지막 순간을 그리며 진한 눈물을 닦았다.

사도가 없었다면 성경이 이렇게 아름답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바오로 사도가 매개로 쓰이지 않았다면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졌을까? 예수님의 사랑을 죽기까지 실천한 바오로의 사랑! 아! 나는 바다를 컵으로 퍼올리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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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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