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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노세키가 외워지지 않아 이놈의 새끼라고 외웠답니다.”
일본에서 만난 재일 교포가 전해준 어머니의 기억이다.
언어는 우리의 기억을 주조한다. 압둘 칼람 전 인도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 언어인 타밀어로 시를 쓸 때면 가장 마음의 안정이 온다고 했다. 세계화의 거센 흐름에서 학생들을 가장 주눅이 들게 하는 것은 영어 실력이다. 소통 능력보다는 토익 점수로 표현되는 서류상의 실력 인증서를 만들기 위해 방학 중에도 아르바이트와 학원을 오가느라 청춘을 틀에 가두고 있다. 이 가두어진 틀에서 ‘창조’는 깃들 수 없다.
영어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과 다른 이야기가 들린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 잊혀 가는 방언을 지키기 위해 이탈리아에서는 2013년 1월에 방언의 날을 정하고 국가 문학상을 제정했다. 방언의 날뿐 아니라 코쿨로 지방 소도시인 아부루조에서는 매해 5월 1일 지역 토착축제인 뱀 축제가 열린다. 무형 문화유산을 지켜서 문화 다양성을 지켜내려는 유네스코 협약을 앞장서서 실현하려는 이탈리아 시민단체 운플리(UNPLI, 이탈리아 지역진흥연합회)가 이루어낸 성과이다.
운플리는 인구가 빠져나가는 이탈리아의 중세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약 6000개의 지역진흥협회로 구성되며 이 네트워크를 통해 6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1만 건 이상의 행사와 전시회, 축제를 조직하고 있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문화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흐름이다. ‘프로 로코’ (지역 사랑) 활동에 지역의 대학, 의회를 망라하여 시민들이 한데 뭉치고 있다. 지역 단위들이 모여 전국 단위의 연합체가 구성된다. 문화 다양성의 연방국가가 구성되는 것이다. 지역사랑 운동을 통해 마을을 떠났던 청년들은 물론 멀리 해외 이탈리아인들의 참여도 이어지고 있다. 마을의 전통이 다시 복원되고 그것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면서 지역은 아연 활기를 띠게 된다,
이탈리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는 9월에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가 이루어지는 스코틀랜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박물관 건립 운동을 하고 있다. 지역의 가문과 씨족이 구심점이 되고 50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면서 박물관을 운영하고 만들어 내고 있다. 박물관은 자기 정체성의 산실이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몽골에서도 근대화 과정에서 저평가되었던 유목 민족의 자연 친화성을 재평가하면서 성스러운 자연과 결부된 성스러운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베스트팔렌 체제라고 했던 국민국가 중심의 근대화 프로젝트가 한계에 달하면서 신문명의 흐름이 모습의 일단을 드러내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기도 하고 21세기 신문명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일사불란, 제복, 단순 반복형, 표준화의 문화 대신 다양성, 상향식, 지역 중심의 문화가 다시 오고 있다. 이 시대에는 비정부 기구의 역할이 강조된다.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협약에는 비정부기구인 NGO를 파트너로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문화가 자연과 분리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 신문명은 자연과 어우러진 종합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새로운 흐름을 감지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제복, 하향식 명령, 획일성이라는 틀은 맞지 않는다. 그들은 몸으로 그것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물꼬는 정치적 차원은 물론이고 문화적 차원까지 관통하는 더 많은 민주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