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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인생의 좌표가 될 수 있는 말

이승하 프란치스코(시인,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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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전국 교도소와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분들의 작품을 심사하고 있다. 최근에 통권 426호가 나온 계간 「새길」의 발행처는 법무부 사회복귀과고 인쇄소는 서울남부교도소다. 비매품이어서 일반시점에서는 판매되지 않는 책이다. 재소자들이 쓴 테마 원고ㆍ시ㆍ수필ㆍ독후감ㆍ서간문 중 내가 심사하는 분야는 테마 원고다. 이번 여름호의 테마는 ‘성숙의 열매를 준비하는 나의 여름’이었고 지난호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 작년 겨울호는 ‘사진 속 이야기’였다. 내가 심사를 맡은 이래 아버지ㆍ선생님ㆍ인연ㆍ운동회 등의 테마가 주어졌다.

3개월에 한 번, 재소자들의 원고 뭉치를 받아 심사하는 며칠은 깊은 슬픔에 잠겨 밥맛도 잃고 얼굴에서 수심이 지워지지 않는다. 가족과 밥을 먹으면서도 한숨을 내쉰다. 가슴 아픈 사연, 진정성이 느껴지는 소중한 글들에 순위를 매기고 탈락시키는 일은 고역이다. 특히 전국 여러 곳에 있는 소년원에서 온 테마 원고는 다 실어주고 싶지만, 20명만 싣기 때문에 절반 이상이 탈락한다. 내 고향인 김천의 소년교도소에서 온, ‘선생님’을 테마로 한 글이 잊히지 않는다. 신 아무개 소년이 쓴 글에 그려진 선생님은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교도관이었다. 접견장에서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교도관은 인생경험 얘기도 해주고, 자유가 없는 그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조언도 해주었다. “지켜보고 있으니 열심히 해라”, “다른 사람을 배려해라” 같은 말이 소년의 마음을 움직였다. 소년은 감동을 받았고 감화를 느꼈다. 늙은 교도관은 어느 날 소년에게 말한다. 척추가 안 좋아 수술을 받게 되었고 이제 곧 정년퇴직도 하게 되었다고. 어느 날부터 눈앞에서 사라진 늙은 교도관의 안부를 걱정하며 소년은 이렇게 쓴다.

“제가 소년원 생활에 적응 못 하고 방황과 위기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제 입장에서 이해해 주시고 공감해 주시면서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니 진정한 선생님의 참된 모습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어떤 선생님보다 위대하고 자상하며 아버지 같은 선생님입니다. 그 은혜 평생토록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참 아름다운 사연이었다. 그런데 나는 뭇 제자들에게 과제 안 해왔다고, 지각과 결석이 왜 이리 잦으냐고, 공부를 이렇게 안 하고 시험을 쳤느냐고 꾸중만 한 선생이었다. 불러놓고서 학생 입장에서 왜 결석을 했느냐, 왜 과제물을 안 냈느냐, 왜 시험을 못 쳤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위로와 배려는 거의 하지 않고, 질책만 하는 엄한 교수가 아니었던가?

소년원에 수감되어 비로소 부모님의 고마움을 알게 된 청소년들이 꽤 있다. 최근에 나는 소년원 아이들의 시를 수십 편 읽고 심사를 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부모님 속을 많이 썩여드렸고 학교에서도 종종 사고를 친 말썽꾸러기들이 마음을 가다듬어 쓴 시를 읽으며 감동했다. 예컨대 이런 시구들이다.

“면회 오신 엄마가/ 내 모습을 보곤 함박웃음을 지어주셨다// 뒤돌아서서 몰래 눈물을 훔치셨다/ 처음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가족이란 퍼즐에/ 꼭 있어야 하는 조각이다/ 이 빠진 퍼즐은 더 이상 없다”

“너무 아파서 하늘나라로 가버린 아빠/ 때늦은 지금/ 가슴 치며 외쳐본다/ 아빠도 아프지 마”

10대 청소년에게 선생님 이상의 감화를 준 늙은 교도관은 진정한 의인이었다. 그 교도관처럼 위대하고 자상하며 아버지 같은 선생님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것 또한 그렇다. 그럴지라도 한 사람의 선생으로서 노력하고 싶다. 나의 말 한마디가 학생들에게 인생의 좌표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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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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