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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로 대주교 암살 24년 후 범인 유죄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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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즈노(미국)=외신종합】 1980년 3월24일 엘살바도르 산 살바도르 한 병원 소성당에서 미사 집전 중 괴한의 총탄에 쓰러진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사진). 그가 죽은 지 24년 세월이 흐른 9월3일 미국 연방법원은 그의 죽음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엘살바도르 전 공군장교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 연방법원 올리버 왱거 판사는 로메로 대주교 암살을 반인륜적 범죄라며 엘살바도르 전 공군장교 알바로 라파엘로 사라이바에게 1000만달러(약 120억)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가운데 250만달러는 로메로 주교 친척들에게 보상금으로 750만달러는 벌금으로 정해졌다.

 로메로 대주교의 먼 친척들의 고소로 시작된 이번 재판은 사라이바의 도피로 피고가 궐석인 채 진행됐다. 사라이바는 당시 군부독재정권에 저항한 로메로 주교의 암살 계획을 주도했으며 엘살바도르 군사정권 기관을 장악했던 로브레토 아우비손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사라이바는 로메로 대주교 암살에 필요한 무기와 차량 등을 준비했으며 운전자에게 암살자를 로메로 대주교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성당까지 태워주도록 명령했다. 그 암살범은 성당에 진입해 총기를 난사해 대주교를 암살했으며 사라이바는 암살자에게 그 대가를 지불한 혐의를 받았다.

 한편 사라이바는 그 뒤 수산업체 안전관리자로 일하다 방문비자로 1980년대 미국에 입국 마이애미와 프레즈노 일대에서 살다가 현재 종적을 감췄다.

 로메로(1917~1980) 대주교는 산 미구엘 출생으로 1942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교구장 비서 교구 신문 편집장 소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다 1967년 주교품을 받았다. 1970년 산 살바도로 보좌주교로 임명됐으며 1977년 2월 산 살바도르 대교구장으로 착좌하면서 정치적 주목을 받았다.

 로메로 대주교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권리를 옹호하고 사회적 폭력을 서슴없이 사용하는 군사정권을 비난했다.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대변자로 나섰던 로메로 대주교는 여러 차례 암살 위협을 받았으며 1980년 미사 집전 도중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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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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