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종합】20년이 넘는 논쟁 끝에 엘살바도르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순교자로 공식 인정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월 3일 “로메로 대주교는 순전히 정치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신앙에 대한 증오’에 의해 죽임 당했다”고 선언하고 로메로 대주교를 순교자로 인정하는 교령에 서명했다.
1977년부터 선종할 때까지 산살바도르대교구장으로 봉직하던 로메로 대주교는 1980년 3월 24일 산살바도르의 한 병원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 무장괴한의 총격을 받고 선종했다. 교황이 로메로 대주교를 순교자로 인정하는 교령에 서명함으로써 그의 시복이 급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교황청 시성성 신학위원회는 1월 8일 만장일치로 “로메로 대주교는 ‘신앙 때문에’(in hatred for the faith) 순교했다”고 발표했고 로메로 대주교 시복 추진에 대한 장애가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 절차는 이미 1993년 교황청에서 개시됐다. 그러나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이 신앙 때문인지 엘살바도르 정부에 반대했다는 정치적 입장 때문인지를 놓고 논쟁이 가열되자 로메로 대주교의 저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시복 절차가 지연됐다.
또한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은 로메로 대주교를 ‘해방 신학의 신봉자’라고 비판하는 투서를 교황청에 보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로메로 대주교는 생전에 “나는 해방신학을 지지하지만 물적 해방만이 아니라 바오로 6세 교황과 같이 물질과 영적 해방 모두를 추구하는 해방신학의 지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로메로 대주교가 순교자로 인정된 것은 그의 시복절차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에서 인정돼 온 순교자 개념을 바꾸는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원칙적으로 배교와 죽음(convert or die)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택했을 경우 시복시성의 대상이 되는 순교자로 인정해 왔다. 이는 로마제국 하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하던 4세기 초까지 정립된 순교 개념이다.
하지만 이번에 로메로 대주교가 순교자로 인정되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순교에 대한 개념도 확대되게 됐다.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 청원인인 빈첸초 팔리아 대주교(교황청 가정평의회 의장)는 2월 4일 기자회견을 갖고 “로메로 대주교는 확실히 올해 안에 가능하면 수 개월 안에 그가 교구장으로 봉직하던 산살바도르에서 시복될 것이고 늦춰질 가능성은 없다”며 “로메로 대주교를 순교자로 인정하는 교령이 나오는 데 20년이나 걸린 것은 오해와 편견의 결과”라고 말했다.
팔리아 대주교는 이어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을 반대하는 의견을 압도할 산더미처럼 많은 증언을 수집해 그가 영웅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실천했고 신앙에 대한 증오에 의해 살해됐음을 입증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