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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순교자’ 로메로 대주교 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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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1980년 피살… 복자 기념일은 3월 24일

 

▲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시복식에서 사제들이 로메로 대주교 혈흔이 묻은 주교복을 들고 입장하고 있다. [CNS]
 

 

엘살바도르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다 숨진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1917~1980 그림 )가 시복됐다.

바티칸 라디오 등에 따르면 산살바도르대교구는 23일 산살바도르 시내 광장에서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 주례로 로메로 대주교 시복 미사를 거행했다. 로메로 대주교 복자 기념일은 로메로 대주교가 암살당한 3월 24일로 정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산살바도르대교구장 오세 루이스 에스코바르 알라스 대주교에게 보낸 서한에서 “새 복자 로메로 대주교의 목소리는 오늘날에도 강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면서 사랑의 힘으로 평화를 건설하고 삶으로 믿음을 증거한 로메로 대주교의 삶을 칭송했다. 이어 “백성들의 고통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었던 순교자 주교를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자”고 말했다.

시복식을 주례한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도 “로메로 대주교의 정신은 현재에도 살아 숨 쉬며 지구상에서 소외받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또 “가난한 이들을 향한 그의 선택은 이념적이지 않고 복음적이었다”면서 “로메로 대주교는 분열이 아니라 평화의 상징이며 아메리카 교회를 빛낸 별”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복 미사에는 주변 남미 국가 대통령들과 남미 교회 추기경 등을 비롯해 30만 명이 운집했다. 제단은 로메로 대주교가 피살 당시 입었던 혈흔이 묻은 주교복과 꽃 초로 꾸며졌다.

로메로 대주교는 중남미 엘살바도르의 산 미구엘 출생으로 로마로 유학을 떠나 1942년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가 돼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산살바도르 교구장 비서 교구 신문 편집장 등을 역임하다 1967년 주교품을 받고 1970년 산살바도르 보좌주교에 임명됐다. 그는 1977년 산살바도르 대교구장에 착좌하면서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로메로 대주교가 처음부터 가난한 이들의 대변인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정치권과 부유층과 가까웠다. 하지만 교구장이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가난한 농민들과 이들을 대변하던 한 예수회 사제가 군부세력에 의해 사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로도 몇 달 간 사제와 수도자 교리교사 신자들이 군사정권에 대항하다 목숨을 잃었다.

로메로 대주교는 이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주저 없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편에 섰고 빈곤 문제 사회 정의 등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교구장 재임 기간 끊임없는 살해 협박에 시달렸지만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럴수록 미사 강론과 교회 언론을 통해 정부의 부당함을 고발하며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기둥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결국 1980년 3월 24일 산살바도르 한 병원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 무장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 추진은 1990년대 초반부터 진행됐지만 그가 신앙 때문에 순교한 것인지 정치적 이유로 살해당한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려 한때 시복 재판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다 남미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이후 시복 움직임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교황은 올해 2월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을 순교로 인정하며 시복을 확정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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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5-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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