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와 폭력에 신음하는 그리스도교… 교황 세계 강대국 ‘암묵적 침묵’ 비난
“(로마제국 치하의) 초대교회 때보다 순교자가 더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8월 30일 정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순례자들과 함께 삼종기도를 바치고 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루 전날 레바논에서 거행된 시리아 출신 순교자 말케 주교의 시복식에 관해 이야기하다 말고 원고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오늘날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잃는 그리스도인들이 초세기 교회 때보다 많다며 “폭력과 박해를 중단시키기 위해 무슨 조치라도 좀 취해달라”고 말했다. 국제 사회를 향한 호소였다. 교황은 이어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 특히 중동 지역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관심을 재차 촉구했다.
교황이 1900년대 초반 오스만 제국 말기에 이슬람 세력에 의해 희생된 말케 주교의 순교 행적을 언급하다 원고까지 내려놓고 즉흥 연설을 한 데는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 사회는 이 문제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교황은 며칠 뒤인 7일 아르메니아 가톨릭의 그레고리 페테 20세 총대주교와 봉헌한 미사에서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세계 강대국들의 ‘암묵적 침묵’을 비난했다.
국세 사회 무관심에 방치돼 있어
오늘날 지구 상에서 가장 탄압받는 종교는 그리스도교다. 그리스도인들이 ‘소수의 양 떼’로 머물고 있는 중동 아프리카 북부 동아시아 이슬람 국가 등지에서 그들은 차별과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최근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세 살배기 꼬마의 주검으로 인해 국제 사회 여론이 들끓는 내전국 시리아만 하더라도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 차이 때문에 일반 난민들(대부분 종파가 다른 이슬람 신자)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 카리타스가 4년째 긴급 구호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시리아 동북부 알 하사카 지역도 최근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 국가(IS)의 테러 공격으로 신앙 공동체가 와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 카리타스 의장 앙투안 오도 주교는 한국 카리타스에 “알 하사카주는 그리스도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어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집중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발생한 무장 폭력 사태로 주민들이 피란을 떠나는 상황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소식을 알려왔다.
평화신문 8월 16일 자 보도
다른 지역도 강도가 덜할 뿐 전개 상황은 비슷하다. 3년 전 케냐 북동부 가리사타운에서 이슬람 무장조직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이 성당과 개신교회에 수류탄을 던져 17명이 사망했다.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에서는 가톨릭 여성들이 심각한 인권 유린에 시달리고 있다. 가톨릭 여성들에게 협박과 폭력으로 개종을 강요하고 이슬람 남성과 원치 않는 혼인을 시키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중동의 다른 국가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강제 개종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한 예로 지난해 여름 이슬람 국가(IS)가 이라크 북부 모술지역을 장악한 뒤 그리스도인들의 재산을 탈취하며 개종을 강요해 4만여 명의 신자들이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당시 민병대원들은 그리스도인 참수 동영상을 유포하기도 했다.
극소수 과격분자들의 만행
그렇다고 이슬람 전체를 그리스도교를 탄압하는 종교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슬람은 어느 종교 못지않게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알라)을 똑같이 믿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도 공경한다. 가톨릭과의 근본적 차이는 예수를 신성을 갖춘 하느님 아들이 아니라 노아 아브라함 모세를 잇는 예언자로 여길 뿐이다. 따라서 삼위일체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들이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차별과 탄압은 대부분 그들 소행이다. 그들 중에 자신들의 명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아파와 대립각을 세우고 전쟁을 일삼는 세력이 IS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쟁을 ‘성전(지하드)’이라고 주장하나 이슬람인들 대부분은 “이슬람의 얼굴에 먹칠하는 극소수 과격분자들의 만행”으로 간주한다.
지난 8월 29일 순교자 말케 주교의 시복식을 주례한 시리아 가톨릭의 요난 총대주교는 “정의와 자유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세계 강대국들의 소극적 태도를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세계의 양심은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