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한국서 살고파”
제 이름은 잠보(54 가명).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태어나 지금은 한국에서 사는 난민 신청자입니다.
독재 정권서 생명의 위협에 떠나와
10년 전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습니다. 오랫동안 독재정권이 지배해온 콩고에서는 정부에 반대하는 말을 하면 가차 없이 국민들을 죽입니다. 길을 지나가다가도 정부군이 쏘는 총에 맞아 죽는 일이 흔합니다. 음악가인 저는 불의한 현실을 노래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협박하기 시작하더군요. 더는 이곳에서 살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2005년 다른 나라로 난민을 신청해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을 하던 저에게 한국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은 1990년대 초반 색소폰 연주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2005년 한 비정부기구를 통해 한국에서 3개월 동안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받아 들어왔습니다. 저는 난민신청을 하고 아내(50)를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10년. 난민 심사를 받는 데만 4년을 보내고 심사에서 떨어진 이후로 미등록 외국인으로 지냈습니다.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되니 밖에 돌아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온종일 가족들과 방 안에 있다가 밤이 돼서야 몰래 일하러 갔습니다. 한국에 와서 두 아이가 태어나면서 들어갈 돈은 계속 많아졌습니다. 카지노나 행사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해가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한국 생활은 전혀 쉽지 않더군요. 언어가 서툴러 사기도 당하고 피부색이 달라 무시도 많이 당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데 한국만큼 안전한 나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없어졌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딸 아이가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것을 보며 지금도 놀라곤 합니다. 제 동생도 난민 신청을 해서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아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무척 위험하다고 하더군요. 한국은 참 평화롭고 안전한 나라라는 것을 느낍니다.
어려움 중에도 신부님 수녀님 덕분에
아내와 6명의 아이를 모두 합해 제 가족은 8명이지만 한국에는 아내와 초등학교 1학년 딸 아이 그리고 3개월 된 막내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교회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서울 이주사목위원회에서 우리 가족이 머물 집을 마련해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수녀님과 신부님들이 손발을 걷어붙이고 도와주고 있습니다. 저는 개신교 신자이지만 이분들을 보면서 하느님이 저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것은 산 넘어 산입니다. 지금도 경찰차만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초등학생 딸 아이는 경기를 일으킬 정도입니다. 콩고로 돌아가게 되면 제 가족에게 일어날 일은 뻔하기 때문이죠.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 평화롭게 살아온 사람들은 저와 제 가족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너무나 쉬운 나라에서 목숨을 걸고 도망친 심정을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 저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요. 살기 위해 한국을 찾아온 사람. 바로 난민입니다.
※잠보씨는 현재 난민심사를 재신청해 심사 중이므로 이름을 밝힐 수 없습니다. 이름을 제외한 기사의 내용은 잠보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김유리 기자 lucia@pbc.co.kr